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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인생의 2막, 고산 등반가 산악인 고미영

정상고집 2009. 6. 3. 22:56

 

 

전 세계 산악인들의 이상향 히말라야. 히말라야는 ‘세계의 지붕’이라는 별명답게 세계최고봉인 에베레스트(8,848m)를 포함한 8000m급 이상의 고봉이 14개가 모여 있는 곳이다. 이를 가리켜 14좌라 부르며, 지금까지 지구상에서 14좌를 완등한 사람은 14명, 모두 남자였다. 이에 새로운 역사를 쓰는 한국인 여성이 있으니 바로 산악인 고미영씨(42, 코오롱스포츠 챌린지팀). 그녀는 여성 산악인 최초로 히말라야 8000m급 14좌와 7대륙 최고봉에 도전. 이미 14좌 가운데 7개 봉우리를 정복했다. 평범한 공무원이었던 그녀가 산악인으로써 변신한 사연과 아름다운 히말라야 도전기


# 내 인생의 1막 - 공무원에서 스포츠 클라이밍선수로
어릴 적부터 자연을 벗 삼아 놀며 산을 좋아했다는 산악인 고미영씨. 집에서 학교까지 꼬박 30~40분을 9년 동안 걸어 다녔다는 고씨는 이때 기본적인 체력이 갖춰진 것 같다며 즐거웠던 어린 시절을 소개했다. 고등학교 졸업 후 공무원 생활을 하던 그는 동료들과 야유회에 갔다가 산의 매력에 흠뻑 빠졌다. 이후 주말이면 배낭을 메고 홀로 산에 올랐다고. 어려운 산일수록 더 재미있다는 걸 안 뒤부터는 지도책을 사 전국의 등산코스를 찾아다녔다.

당시 평범한 공무원이었던 그를 전문산악인으로 바꿔놓은 결정적인 사건은 북한산 등반이었다. 본래목표였던 백운대 코스 대신 험준한 만경대코스를 택한 것이 시작이었다. 당시 72kg이었던 고씨는 “뚱뚱한 여자가 부들부들 떨며 암벽 등반을 하는 걸 보더니 안 돼 보였는지 지나가는 전문산악인들이 도와줬다”며 “그들과 함께 정상에 오른 후, ‘나도 이들처럼 암벽을 잘 타고 싶다.’ 는 욕심에 곧바로 코오롱 등산학교 암벽반에 입교했다”고 한다. 하지만 사람들은 뚱뚱한 여자가 암벽을 시작한다고 하니 ‘며칠이나 하다 말겠지’하는 시선으로 바라봤다고. 이에 고씨는 오기를 가지고 더 집중할 수 있게 되었다고 한다. 그리고 1년 후, 20kg를 감량하며 암벽등반과 함께 인생에 대한 새로운 활력소와 자신감을 갖게 됐다.

92년 최고의 여성 클라이머(암벽등반가) 차선영씨가 갑작스런 부상을 당했다. 주위에서는 모두들 ‘10년 안에 그런 여성 클라이머는 나오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그때 고씨는 ‘내가 한번 해 봐야겠다.’라는 결심을 했다고. 그녀는 93년 처음 출전한 암벽대회에서 6위에 올랐고, 이어 인천 클라이밍대회 우승을 시작으로 그녀의 독주는 이어졌다. 암벽등반에 재미가 들린 그녀는 10년 동안 다니던 직장도 그만두었다. 1995년부터 2003년까지 전국대회 9연패는 물론이고 아시아 선수컵 6연패, 세계랭킹 5위까지 오를 정도로 승승장구, 거칠 것이 없었다. 게다가 취미로 시작한 산악스키에서도 전국대회 우승을 거머쥐기도 했다.

# 내 인생의 2막, 고산 등반가 산악인 고미영
다양한 스포츠 분야에서 고르게 두각을 나타냈던 고씨는 나이 마흔을 넘어서 선수생활이 힘들다는 것을 느끼고 새로운 변화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마침 소속회사(코오롱 스포츠)강사들끼리 파키스탄 드라피카로 고산등반을 갔던 게 그녀가 산악인으로써 인생 2막을 시작하는 결정적 계기가 되었다.
“처음 가 본 고산등반이 그렇게 재미있을 수가 없었어요. 같이 간 친구들이 모두 놀랄 정도로 고소적응을 잘했죠. 출발 전엔 걱정을 많이 했었는데, 등반하면서는 ‘아, 이게 내가 가야할 길이구나’라고 감이 딱 왔어요. 그리곤 ‘그래, 한번 해보자. 그러나 무작정 도전하느니 아직 아무도 도전하지 않은 세계 여성 최초 14좌 완등을 목표로 하자’고 마음을 먹었어요.” 이렇게 그녀는 스포츠 클라이머에서 고산등반가로 전환해 제 2의 인생을 맞이했다.
“워낙에 체질이 고산 등반에 딱 알맞은 ‘맞춤형’으로 태어난 거 같아요. 숨조차 쉬기 어려운 해발 수천 미터를 넘나드는 산 위에서 고산병으로 힘든 적이 한 번도 없었거든요. 또한, 왕성한 식욕으로 인해 등반 후 오히려 살이 쪄서 돌아올 정도예요.”
고산등반이 체질에 맞는다며 웃는 고씨. 그녀 2011년까지 히말라야 14좌 완등목표를 적은 작은 엽서를 가지고 다니며 만나는 사람들에게 나눠주곤 한다. 자신의 목표를 가능한 많은 사람들에게 알리며 목표 달성을 위한 강한의지와 자극을 주기 위해서다.
 
현재 히말라야 8000m급 14좌중 7개를 등반한 고씨는 다음달 3월부터 10월까지 다시 최고봉 도전을 시작한다. 2011년까지였던 완등목표를 2010년으로 마무리 앞당기기 위해서다. “저는 클라이밍 할 때도 목표가 단기, 장기로 나눠서 실천했어요. 단기목표를 전국대회 우승, 그리고 나선 아시아 대회 우승에서 세계랭킹 순위로 항상 목표를 가지고 도전했죠. 지금도 마찬가지로, 2009년은 마칼루(8,463m)를 포함해 8000m급 봉우리 4개를 등정할 계획이에요.”
2년 이내 14좌 목표를 달성하면 이제는 후배들 육성을 위해 대학원에 진학하여 강단에 서고 싶다고 밝혔다. 그녀의 도전은 여기서 끝이 아니라 시작이란다. “현재 등반 틈틈이 적고 있는 글들을 하나의 책으로 만들어 고산등반의 특별한 경험을 같이 공유하면서 일반인들을 대상으로 한 8000m급 지도자 역할도 해보고 싶어요.”라며 자신의 포부를 밝혔다.

오늘도 희망이라는 산을 오르는 한국의 셰르파니 산악인 고미영씨. 워낙 산에서 잘 먹고 잘 걷고 네팔 고산족 셰르파 여성처럼 강인하다고 하여 지어진 별명이다. 이제는 아시아를 넘어 세계 여성 등반사에 의미 있는 신화를 만들 그녀의 귀추를 주목해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