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에베르스트만 남았습니다."
지난 주말 신촌의 한 식당에서 마주 않은 김홍빈 씨(한국 장애인 5대륙 최고봉 원정대)는 대뜸 에베르스트 얘기로 말문을 엽니다. 저간의 인연으로 알게 되었지만 직접 만나기로는 처음의 일이었습니다.
김·홍·빈
그는 산사람입니다. 지금까지 그는 국내외의 수많은 산의 품에서 행복도 불행도 맞이했습니다. 그는 자신의 조국인 한국에서보다 외국에서 더 이름이 알려진 사람입니다.
한눈에 보기에도 그에게선 산사람다운 풍모와 품성이 느껴집니다. 그는, 우리 나이로 서른 일곱에 그런 웃음 지을 수 있는 이 흔치 않을 것 같은 생각이 들게 하는 사람입니다. 그이의 웃음에 아픔과 절망이 묻어 있음을 발견하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하지만, 아마도 그를 처음 보는 이들이 그의 웃는 얼굴과 만나 악수를 할 때 당황할지도 모를 일입니다. 왜냐하면 그의 양손에서 손가락을 하나도 볼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김홍빈, 그이는 장애인입니다. 그가 장애를 얻은 것도 '그 놈의(?)' 산 때문이었습니다.
북미대륙의 고산 맥킨리봉(6,194m 본래 이름은 데날리로, 데날리는 에스키모어로 "가장 높은 산"이란 뜻이라고 함).
이 맥킨리산은 상대적으로 높이는 덜하지만 북극에 가까워 공기층이 얇아 고소증이 고도에 비해 심합니다. 강한 바람, 유난히 짙은 운무와 폭설을 동반하는 한편 주위를 분간하기 어려운 백야 현상 때문에 여간해서는 등정을 허락하는 법이 없는 험한 산이라고 합니다.
지난 1979년 청추대팀 고상돈, 이일교, 박훈규씨가 처음 등정에 성공했으나 하산도중 추락, 고상돈, 이일교씨가 사망한 일이 있으며, 1992년에도 제주대팀 양영수, 전성종, 홍성탁씨가 추락 사망하는 사고가 났던 사실로 충분한 짐작이 가능합니다.
1991년 5월, 김홍빈은 언제나처럼 맥킨리에 오르고 있었습니다.
"홀로 오르는 단독등반이어서 힘들었지만 5,000m까지는 아무 일 없이 오를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올라갈수록 혹한과 고소증이 더해 갔습니다."
5,700m쯤에 캠프를 치고 휴식에 들어갔을 때……, 그는 극도의 혹한과 허기, 그리고 고소증에 시달리며 잠이 들었습니다. 그가 의식불명에서 깨어났을 때 앵커리지의 한 병원이었습니다. 꼬박 일주일 동안 '잠'을 잔 거였습니다.
"이거 비싼 손입니다. 1억 원이 훨씬 넘게 들어갔으니까. ……"
술잔을 건네며 아무렇지도 않게 순박한 웃음을 지으며 말합니다.
그렇게 목숨을 건졌지만, 그 사고로 그는 동상이 걸려 양손을 잃었습니다. 수 차례에 걸친 대수술을 통해서 그나마 현재의 모습을 유지할 수 있었답니다.
'좌절을 극복한 의지의 한국인'. 이런 '구태의연'한 말을 싫어하는 이들도 김홍빈씨의 얘기를 들으면 그런 말이 생긴 이유를 납득하게 될 겁니다.
"처음엔 인정하고 싶지 않았지만, 내가 장애인이라는 걸 인정하고 나니까 새로운 세상이 보입디다."
네, 그이가 '인정' 했듯이 김홍빈은 450만 장애인 가운데 한사람입니다. (공식적인 정부 통계로는 150만이라고 하지만 장애인 관련 단체들의 주장이 설득력 있습니다. 그러니까 우리나라 인구의 10%가 장애인인 셈인데 우리나라 장애인 정책의 수준은 물론 우리들의 장애인에 대한 의식과 문화는 어떤 지요. 벌써 천 일을 훨씬 넘긴 '에바다 사건'은 하나의 작은 예에 불과합니다.) 1년 여의 좌절과 절망의 끝에서 그는 다시 일어섰습니다.
"골프장 일, 굴삭기 운전도 하고 했는데, 쉽지 않아요. 대형차나 굴삭기 운전은 누구보다 잘 할 수 있는데도 손이 이러니까 면허증을 딸 수 없다는 거예요."
초연한 듯 얘기했지만, 장애인에 대한 우리 사회의 '법의 편견'을 알 수 있습니다. (참고로 장애인은 2종 보통까지만 취득할 수 있음.)
그의 아내(박옥연, 33)의 헌신적인 도움과 많은 이들의 격려로 그는 다시 산에 오를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 후 그의 장애인에 대한 의식의 변화와 산에 대한 꿈은 한국 장애인 5대륙 최고봉 원정대로 결실맺어졌습니다.
그래서, 지난 97년에는 유럽 엘브루즈(5,642m)과 아프리카 킬리만자로(5,895m)를, 그리고 98년에는 남미 아콩카구아(6,960m)와 북미 맥킨리(6,194m)봉을 등정하는 데 성공하기에 이르렀습니다. 그리고 오는 8월 5대륙 최고봉 가운데 아시아의 에베레스트(8,848.13m) 등정을 앞두고 막바지 몸 만들기 중입니다. 이미 89/90 동계에 에베레스트에 등정한 적 있습니다만, 이번은 의미가 다릅니다. '다른 의미' 대해서 따로 말하지 않더라도.
"예정대로라면 에베레스트는 지난해 등정했어야 하죠. …… 실은, 등정에 드는 비용 마련이 더뎌서 미루어진 겁니다."
알고 보니, 에베레스트는 세계 최고봉답게 오르기 어려운 것만이 아닌, 아주 '비싼' 산이더군요. (그만치 많은 이들이 오르기를 원하고 가난한 나라 네팔로서는 중요한 관광자원이니까 이해가 되는 부분이기도 하지만 말입니다.) 에베레스트에 오르기 위한 허가비(permission)만 해도 한 팀(7~12인 기준)당 7만 미국달러가 들어간다고 하니 여간한 일이 아닌 셈입니다.
그 동안 써왔던 장비를 제외하고 새롭게 필요한 장비비도 500여만 원이 드는데 이들에 대해서는 관련 업체 세 곳의 도움으로 해결되었고, 한 항공사에서 왕복 항공권을 제공해서 항공비도 마련된 상황이라고 하면서 특별히 고마움을 꼭 표현해달라고 부탁합니다. (손이 불편하니까 보호와 등정에 필수적인 기능성 특수장갑을 제작해 주기도 한다는군요.)
"그나마 다행인 건, 이남진 변호사께서 단장으로 나서셔서 큰 힘이 됩니다."
"이남진(44) 변호사는 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의 이사이기도 하고 천리안 산악동호회 회원으로 있어서 장애인과 산에 대한 애정을 동시에 지니신 분이라서 적역"이라고 곁에 있던 방송작가 정성태씨는 거들고 나섭니다. 장애인 프로그램 <사랑의 가족(KBS 2TV, 매주 토요일 오후 1시 15분 방영)>을 집필할 때 김홍빈씨와 인연이 시작된 후 정성태씨는 김홍빈씨의 '팬'이자 적극적인 후원자가 되었답니다. 정성태씨는,
"허영호, 엄홍길, 박영석씨 등 유명한 산악인들에 비해서 홍빈이 형이 덜 알려진 건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실력이 덜한 건 아닐 거예요. 지난해 KBS에서 캉첸중가 등반 실황중계를 위해서 쓴 돈이 30억 원이 넘는다고 하는데 …, 물론 그 예와는 다른 차원의 일이지만 말예요."
하면서 말끝을 흐립니다. 그는 장애인 김홍빈씨의 등정 모습을 카메라에 담아 다큐멘터리로 제작한다면 얼마나 감동적인 '좋은 그림'이 될 것인가를 생각하는 천상 '방송쟁이'입니다.
그는 실제로 지난해부터 김홍빈씨 에베레스트 등정을 다큐멘터리화 하기 위해 백방으로 뛰고 있습니다. 자신이 직접 기획한 안을 가지고 각 지상파 방송국에 제안을 하고 여러 대기업에 협찬 제안을 했지만 좌절된 상태라고 합니다. 그래서 최근에는 BBC나 NHK 등 외국의 국영방송을 접촉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하면서도 그는 한국 산악인을 외국 방송국에서 다룬다는 게 꺼림칙하다고 하더군요.
김홍빈씨를 만나는 내내 그런 생각을 해봤습니다. 그를 장애인으로 보는 것이 아닌 한국 산악인의 한사람으로서, 나아가 비장애인도 오르기 힘든 산을 올랐다는 사실만으로도 이미 그는 모두의 자랑이자 소중한 우리의 자산이 아닌가, 하는…….
그는 말합니다.
"(에베레스트는) 끝이 아니라 시작일 뿐입니다. …… 영웅이 되고 싶지는 않지만, 내가 산을 오름으로써 우리 장애인들에게 꿈과 희망을 줄 수 있기를 바랍니다."
늦은 시간, 그와 헤어지며 잡은 그의 '조막손'은 따뜻하고 부드러웠습니다. '예전'의 군살 박힌 단단한 손은 아니지만, 그의 손에서 또 한번 산사람의 질박한 꿈을 느꼈습니다. 손을 놓고 집을 향해 돌아서는데,
"이 작가님도 많이 좀 도와주쇼, 잉~"
지금은 광주에 사는, 순천 촌사람 김홍빈의 사투리가 귀를 울리고, 겸손하고 어질게 보이는 그 모습이 왜 그렇게, 잘려 없어진 손가락 궂은 날 쑥쑥 쑤시듯이 아프게 느껴지던 지요.
'그가 할 수 있는 최고(최선)의 '노동'은 산에 오르는 일일 거야…….'
라는 생각 해보며 집을 향했습니다.
※ 김홍빈씨의 프로필을 졸시 몇 줄에 대신합니다.
김홍빈
1964년 10월 17일생 (O형)
1977년 고흥군 동강면 청송초등학교 졸업
1980년 보성군 벌교읍 벌교중학교 졸업
1983년 순천시 매산고등학교 졸업
1985년 광주시 송원대학 전자계산과 졸업
1990년 광주시 광주대학교 전자계산과 졸업
1991년 국제화제 보험 설계사
1992년 전성기공 전산실 근무
1993년 2종 보통 운전면허 취득(1종 보통 반남)
1994년 클럽900 골프장 근무
굴삭기, 페루다, 4t, 2.5t트레이드, 대형차 기타장비 운전
…………………………………………………………………………
89/91 동계 전국체전 노르딕, 바이아드론 스키 1,2,3위
89/90 동계 에베레스트(8,848m) 등반
90년 파키스탄 낭가파르밧(8,125m) 등반
91년 북미 맥킨리(6,194m) 단독등반 중 사고로 "양손절단"
95년 동계 전국체전 알파인 스키 3위
97년 일본 다테야마(3,015m)등반 후 스키로 하산
97년 유럽 엘브루스(5,642m) 등정
97년 아프리카 킬리만자로(5,895m) 등정
87/98 남미 아콩가구아(6,959m) 등정
98년 북미 맥킨리 (6,194m) 등정
88/99 남미 아콩가구아(6,959m). 쎄레또레(3,128m) 등반대장
99년 러시아 레닌피크(7,134m) 등반
2000 네팔 마나슬루(8,163m), 8,063m 도달
현 한국 장애인 알파인스키 대표선수
현 송원대학 산악회 0.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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