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루팔 마을의 여름. 여름이 되면 낭가파르바트 루팔베이스캠프 가는 길은 야생화 천국으로 변한다.
그러나 설산 너머 디아미르베이스캠프에서는 비극적인 사건이 일어났다.
세계 9위봉 낭가파르바트(Nanga Parbat·8125m)는 카슈미르어로 ‘헐벗은 산’이라는 뜻이다. 20세기 초·중반 수차례 도전장을 낸 독일 원정대가 잇따라 인명 사고를 당해 ‘킬러 마운틴(Killer Mountain)’이라는 섬뜩한 닉네임이 붙어 있기도 하다. 지난 6월에는 파키스탄 탈레반으로 알려진 무장 괴한들이 낭가파르바트 디아미르(Diamir) 베이스캠프(4200m)를 습격해 잠자던 등반가 10명을 살해하는 끔찍한 일이 벌어졌다. 같은 날, 우리 일행은 산 건너편 루팔사이트 타르싱(Tarshing·2950m) 마을에 있었다.
3 베이스캠프 주변에서 죽은 향나무를 베 땔감을 해오는 현지인들.
4 루팔베이스캠프는 고도가 낮다. 주변은 초지다.
5 루팔베이스캠프 올라가는 도중에 내려다본 타르싱 마을.
탈레반의 학살 … 외국 등반가 10명 희생
지난 6월 23일 오전 9시(이하 현지시간), 파키스탄 북부 낭가파르바트 루팔(Lupal)사이트 베이스캠프(3500m)를 향해 걷고 있었다. 트레킹이 시작되는 타르싱은 뿔처럼 솟은 라이코트피크(7070m)를 등에 업은 마을이다. 마을에서 올려다 보이는 능선은 서쪽에서 시작해 낭가파르바트 정상까지 수십km 넘게 펼쳐져 있었다.
루팔(3100m) 마을을 지나면 비로소 낭가파르바트 주봉이 나타난다. 수많은 클라이머에게 환희와 좌절을 안긴 거대한 루팔 벽이 자리한다. 베이스캠프에 닿기 전 마지막 민가, 루팔 마을의 허름한 가게 앞 나무 벤치에 앉아 200루피(약 2000원)짜리 탄산수 병마개를 막 비틀어 따려는 참이었다. 건강한 사내 둘이 땀을 뻘뻘 흘리며 달려오더니 가이드 이스마일(34)에게 허겁지겁 몇 마디를 토해냈다.
“보스, 큰일 났어요. 어젯밤에 산 건너편에서 사고가 나서 외국인 등 10명이 죽었대요. 굴람 말로는 ‘탈레반이 총으로 쐈대요’.”
굴람은 이스마일이 속한 현지 트레킹 회사의 대표다.
“보스, 어떻게 할까요? 굴람은 베이스캠프로 올라가는 건 위험하대요. 하지만 결정은 어디까지나 보스 마음이에요.”
나는 처음엔 무슨 소리를 하는지 몰라 “왓(What)?”이라는 말만 되풀이 했다. 무장 이슬람 단체인 탈레반이 파키스탄에 들어온 외국인을 왜 총으로 쏴 죽였다는 것인지, 상식과 경험을 벗어나는 몇 마디의 말로는 쉬 이해가 되지 않는 상황이었다.
6 들판에서 만난 양치기.
전화 통화 후 다리에 힘이 풀렸다. 우리의 트레킹 스케줄은 루팔 쪽 베이스캠프를 다녀와 이틀 후 디아미르 쪽으로 갈 계획이었다. 이틀 사이로 생사가 왔다 갔다 한 셈이다.
‘탈레반이 왜 무고한 산악인을 쐈을까’.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아마도 총을 쏜 사람 외에는 아무도 모를 일일 것이다. 어쨌든 앞으로 나아갈 것인가 하산할 것인가를 결정해야 했다.
루팔 베이스캠프는 사고가 난 디아미르 사이트에서 멀리 떨어져 있다. 직선거리는 20㎞ 남짓이지만, 찻길은 족히 100㎞가 넘는다. 또 디아미르 사이트와 루팔 사이트는 문화권이 다르다. 본래 디아미르 사람들은 파키스탄 북부인들 중에서도 사납기로 유명하다.
우리는 일단 “루팔 쪽 베이스캠프로 올라간 후 촬영을 마치고 오늘 중으로 내려가자”고 잠정 합의했다. 그리고 피치 못할 상황이 오면 그때 가서 다시 결정하기로 했다. 타르싱에서 루팔을 거쳐 베이스캠프로 가는 길은 10㎞ 안팎, 네댓 시간 걸리는 거리다. 충분히 하루 만에 왕복할 수 있는 길이었다.
루팔을 지나도 길은 별반 다름없었다. 오른편으로 거대한 낭가파르바트의 줄기가 뻗어 있었고, 그 아래로 빙하와 빙퇴석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4000m 아래로는 드문드문 소나무와 향나무 군락이, 그 아래로는 푸른 초지가 끝없이 펼쳐져 있었다. 세상을 비관하는 이들만 모아 트레킹 팀을 꾸린다 해도 ‘이렇게 아름다울 수가…’라는 감탄사를 연발할 수 밖에 없는 길이었다. 정말 아름다웠다.
2 여름이지만 밤에는 쌀쌀해 짐꾼들은 불을 피운다.
중무장한 경찰 호위 속 칠라스로 이동
그러나 아름다움에 취해 걷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몇 시간 전에 참극이 벌어졌다는 것이 놀랍고 또 가슴 아팠다. ‘자라 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 보고 놀란다’고, 길가에서 삽과 양산을 들고 지나는 턱수염 덥수룩한 남자만 보아도 ‘혹시 저 사람도…’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무장 괴한들은 22일 오후 9시30분에 디아미르 베이스캠프를 덮쳐 잠을 자고 있던 이들을 잡아 포박한 뒤 일일이 여권을 대조해 외국인을 가려냈다고 한다. 우크라이나인 3명, 슬로바키아인 2명 등 10명이 목숨을 잃었다.
총격 사건이 발생하기 이틀 전인 6월 20일 오전 5시, 우리 일행은 오래돼 시큼털털한 냄새가 나는 8인승 밴에 온갖 짐을 싣고 파키스탄의 수도 이슬라마바드를 출발해 북부 카라코람(Karakoram) 히말라야로 향했다. 그리고 오후 7시 비샴(Besham)에 도착했다.
그나마 여행자가 묵을 만한 숙소인 인터콘티넨털호텔에 여장을 풀고 사진을 몇 컷 찍어 보려고 호텔 문 밖을 막 나섰을 때다. 순식간에 AK 소총을 든 정복 경찰과 군인, 그리고 무슬림 전통 복장을 한 이들에게 둘러싸이고 말았다.
그중 사복을 입은 사내가 “당장 호텔로 들어가라”고 명령했다. 백주대낮에 걷는 자유마저 박탈당하자 “당신은 누구냐?”며 겁 없이 대들었다.
“시큐리티(보안경찰).”
“왜 이 거리를 걸어 다닐 수 없는지 설명하면 들어가겠소.”
하지만 어이없어 하는 쪽은 무슬림 복장을 한 경찰이었다. 그는 억울한 일을 당한 것처럼 두 팔을 하늘로 들어 올리는 시늉을 했다. 그리고는 주변을 향해 뭐라고 지껄였다. ‘저 외국인이 나보고 와이(Why)라고 했어, 이상한 사람이야.’
짐작하건대 파키스탄 군대와 경찰은 파키스탄 탈레반이 외국인을 노리고 있다는 정보를 이미 갖고 있었던 것 같다. 그러니까 그들은 탈레반으로부터 외국인을 보호하는 임무를 수행하고 있었던 셈이다. 이슬라마바드에서 북쪽으로 200㎞ 떨어진 비샴에서 카라코람하이웨이(Karakoram Highway·KKH)를 따라 칠라스(Chilas)에 이르는 지역은 예부터 파키스탄 탈레반의 근거지다.
6월 21일, 비샴을 떠나 칠라스로 가는 길에는 경찰의 경비가 더 심했다. 지난해 8월, 바부사르패스(Babusar Pass·4170m) 인근에서 탈레반이 버스 폭탄 테러를 일으켜 시아파 무슬림 십수 명이 숨졌으며, 6개월 전에는 칠라스 인근 지역 주민 간에 총격전도 있었다. 삼엄한 경비는 이 때문이었으며, 비샴에서 칠라스까지 KKH를 지나는 외국인 수송 버스는 물론 현지 버스까지도 지붕에 기관총을 매단 픽업 트럭이 앞뒤로 호위했다.
반면 그날 해질녘에 도착한 칠라스는 의외로 평화로웠다. 행동을 제약하는 경찰이나 군인도 자취를 감췄다. 시내 한복판 이발소에 들어가 머리도 깎고, 시장을 어슬렁거리며 바나나와 체리를 사고, 길거리에서 염소 꼬치구이를 사먹으면서 사내들과 어울렸다.
그러나 다음날, 칠라스에서 약 100㎞ 떨어진 디아미르 사이트에서 외국인 원정대 10명이 목숨을 잃은 것이다.
낭가파르바트(파키스탄)=김영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