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라코람히말라야 파유피크를 지나는 당나귀 행렬. 이곳에서 당나귀는 중요한 운송 수단이다.
아찔한 절벽을 넘고 빙하를 건너 5000m 베이스캠프까지 짐을 실어나른다.
간혹 빙하에서 미끄러져 발목이 부러진 당나귀는 그 자리에서 눈을 뜬 채로 죽어간다.
파키스탄에는 히말라야 8000m 이상 14개 봉우리 중에서 5개가 있다. 우기가 없는 파키스탄 고산지대는 사철 건조하고 척박하다. 3000m 이상은 마른 빙하 지대, 5000m 이상은 웅장한 검은 벽이 ‘신전(神殿)’을 이루고 있다.
사막·눈·빙하 따라 험난한 여정 … 신들의 세계에 들어가다
7세기 초 실크로드를 통해 중앙아시아까지 온 당나라 고승 현장은 『대당서역기』에 ‘흑령(黑嶺)을 넘어서면 비로소 인도로 들어간다’고 적었다. 흑령은 현지 말로 카라코람(Karakoram), 그래서 이 지역을 카라코람 히말라야라고 부른다.
‘히말라야 8000m 14좌 베이스캠프를 가다’ 두 번째 여정은 ‘카라코람의 제왕’ K2(8611m) 베이스캠프 트레킹이다.
해발 3000m 아스콜리 마을의 푸른 밀밭. 밀은 파키스탄 고산족의 주식이다.
다시는 가고 싶지 않은 카라코람 가는 길
카라코람 히말라야는 그레이트 히말라야가 끝나는 지점에서 시작된다. 그레이트 히말라야는 동쪽 부탄에서 시작해 티베트~네팔을 거쳐 파키스탄 북부 낭가파르밧(8125m)까지 약 2000km에 이른다. 세계 최고봉 에베레스트(8848m)를 비롯해 8000m 봉 9개가 그레이트 히말라야에 있다. 이 산줄기는 인더스강에 의해 꼬리가 잘리는데, 그 강 서쪽이 바로 카라코람 히말라야의 시작점이다. K2를 비롯해 브로드피크(8047m), 가셔브룸1(8068m), 가셔브룸2(8035m) 등 4개 봉우리가 어깨를 맞댄 ‘히말라야 속의 히말라야’다. K2에서 발원한 발토로 빙하를 따라 길이 이어져 발토로 빙하 트레킹이라고도 한다.
지난 7월 이곳을 다녀왔다. 한 달이 넘는 간난고초(艱難苦楚)를 20자로 정리하면 ‘한 번은 가볼 만하지만, 두 번은 가고 싶지 않은 여정’이다. 엄살이 아니다. 전문 산악인도 한결같이 하는 소리다. 사막과 크고 작은 암석들이 무질서하게 놓여져 있는 이른바 너덜지대, 질퍽한 눈길 그리고 검은 벽뿐인 빙하를 따라 장장 150km를 걸어야 한다. 사람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황량한 땅, 빙하에서 내려온 돌가루 섞인 물로 간신히 밥을 짓고, 해가 뜨면 걷고, 해가 지면 자야 하는 여정이다. 빙하의 끝 지점인 K2 베이스캠프(5050m)까지 가는 길은 꼬박 열흘이 걸린다. 이것도 6~8월 날씨가 좋을 때 얘기다.
원정대의 짐을 베이스캠프에 내려놓고, 집으로 돌아가는 현지 포터들.
북부 파키스탄의 거점 도시 스카르두(Skardu)는 카라코람 히말라야의 들머리이다. 흙먼지 풀풀 날리는 작은 읍내에 불과하지만, 파란만장한 중앙아시아의 역사가 고스란히 녹아 있는 도시다. 주민은 훈족과 티베트인의 후예로, 기원전 4세기 알렉산더대왕의 동방원정 때 일부가 정착했다는 설도 있다. 어디까지나 설일 뿐 역사적 근거는 빈약하다. 6~7세기까지 간다라불교의 영향을 받았지만, 이슬람의 팽창 이후 지금까지 그 영향권에 있다. 암각화 등 불교문화 유산이 남아 있어 세계적인 여행서 『론리플래닛』은 ‘작은 티베트’로 소개하고 있다.
희뿌연 먼지 속에 잠긴 시내는 택시·자전거 등 바퀴 달린 것들로 인해 앞을 가늠하기가 힘들다. 가이드 알리(32)는 “화물차든 택시든 대부분 무허가다. 번호판은 운전사가 집에서 직접 만든다”고 했다. 듣고 보니 번호판이 모두 제각각이다. 사실상 중앙정부의 행정력이 미치지 않은 오지이기 때문이다.
거리에서 여자를 보기 힘들다. 대신 다정하게 손을 잡은 ‘남남커플’이 눈에 띄었다. 알리는 “동성애자는 아니고 친구 사이일 뿐”이라고 일러줬다. 친한 친구끼리 손잡고, 또는 팔짱낀 채 길을 걷기도 하는 우리나라 여자들처럼 말이다. 스카르두에서 K2 베이스캠프까지는 약 180km다. 이곳에서 지프가 갈 수 있는 마지막 마을 아스콜리(Askole)까지는 한나절 길이다. 아스콜리에서 K2까지 100km 길은 에누리 없이 걸어야 한다.
희뿌연 스카르두 시내. 건조한 기후 때문에 항상 흙먼지가 날린다.
유서 깊은 고도 스카르두와 아스콜리
지난 7월 2일 아스콜리에서 첫 야영을 했다. 휘영청 밝은 보름달이 앞으로 가야 할 험난한 여정을 환하게 비추는 듯했다.
마을 주민은 300여 명. 젊은 남자는 100여 명으로 6월이 되면 원정대와 트레킹 팀의 짐꾼으로 일한다. 마을 한가운데에는 1954년 K2를 초등(初登)한 이탈리아인들이 기부한 박물관이 있다. 어두컴컴한 흙집 안에 오래전 유럽인이 촬영한 사진과 유물이 전시돼 있다. ‘남자들이 일하러 떠나면 여자와 아이들만 남아 밭일과 가축을 돌본다’. 1950년대에 찍힌 사진에 붙은 설명이다. 넝마 같은 옷을 입었지만 굵은 광대뼈를 가진 강인한 사내들이 하얀 이를 드러내 보이고 있었다.
60년이 지난 오늘도 이들의 삶은 크게 다르지 않다. 짐꾼들은 여전히 엉덩이 아래까지 내려오는 이슬람 전통 의상을 입는다. 바람이 솔솔 들어오는 얇은 옷 한 벌로 해발 5000m 고개를 넘는 일이 다반사다. 우리 팀 짐꾼의 우두머리 헤다르(31)는 열다섯 살부터 이 일을 했다. 헤다르는 “당나귀를 사서 카라반으로 돈을 많이 벌고 싶지만 큰 당나귀 한 마리 값은 나의 일 년 벌이와 비슷하다”고 말했다. 그는 트레킹 시즌 서너 차례 원정을 통해 모두 7만~8만 루피, 우리 돈으로 100만원 정도를 번다.
현지인이 현금을 만질 수 있는 기회는 많지 않다. 하루에 10달러(약 1만1500원) 정도 벌 수 있는 짐꾼 일은 그래서 경쟁이 치열하다. 우리 팀에는 열여덟 살인 알리도 끼여 있었다. 커피색 피부에 곱상한 얼굴의 고등학생으로 아르바이트에 나섰다고 한다. 알리는 “이번 일이 끝나면 대입 시험을 봐야 하기 때문에 돈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해발 5000m에 한 번도 가본 적이 없다는 그는 우리 일행만큼 고소 증세에 대한 걱정이 많았다.
아스콜리 마을의 야영지.
‘눈의 거처’ 히말라야에 펼쳐진 사막
트레킹 첫날 오전 마을을 벗어나자마자 순간 이동을 한 것처럼 사막이 펼쳐졌다. ‘눈의 거처’라 이르는 히말라야에서 만나는 사막은 당혹스럽다.
파키스탄 북부는 우리나라보다 위도가 높지만, 네팔히말라야에 가로막혀 좀처럼 비가 오지 않는다. 또 모자를 쓰지 않으면 두피가 따가울 정도로 강렬한 볕이 내리쬔다. 지열이 절정에 이르는 한낮의 기온은 섭씨 40도에 육박한다. 다행히 강변 쪽에는 비지땀을 식혀줄 바람이 일었다. 석회석 가루를 가득 머금은 시커먼 강물은 마치 기름띠처럼 흘러갔다. 검은 산 아래 검은 강이다.
2010년 가셔브룸5(7321m) 원정대를 따라 이 길을 처음 걸었다. 그때 ‘두 번 다시 오고 싶지 않다’고 했는데, 그 길에 다시 와 있었다.
앞으로 나아갈수록 뒤가 아득해 보이는 길, 머릿속 잡념을 하얗게 날려버릴 정도로 오직 걷는 것 말고는 할 게 없는 길이었다. 떠나오기 전 찾았던 전남 순천 금둔사의 지허 스님이 하신 말씀이 떠올랐다. 일귀하처(一歸何處). ‘모든 것이 마침내는 한 군데로 돌아간다 하니, 그 하나는 어디로 가는가’.
현지 포터가 반석 위에서 자파티를 만들기 위해 반죽을 빚고 있다. 자파티는 잡곡을 섞은 밀가루로 만든 빵이다.
아스콜리에서 30km쯤 떨어진 거리에 있는 파유(Paiju·3368m)는 오아시스와 같은 야영지다. 화염산과 같은 사막을 이틀 정도 걸으면 파유피크(6600m) 남동쪽 사면에 미루나무와 사시나무가 제공하는 천상의 화원을 만난다. 발토로 빙하로 들어온 트레커는 여기서 염소를 잡아 배불리 먹고, 고소 적응을 위해 두 밤을 잔다.
파유에서 이틀을 더 걸어 우르두카스(4011m) 야영지에 당도했다. 트레킹 4일째. 걸어온 거리는 60km 남짓이다. 여기서부터 검은 산이다. 파유피크를 포함해 울리비아호(6417m), 트랑고타워(6545m), 캐시드럴타워(5866m), 롭상스파이어(5707m) 등 검은 거벽이 하늘을 찌를 듯 솟아 있다. 신들의 세계에 들어온 셈이다. K2까지는 5일 더 남았다.
발토로 빙하 트레킹 여행 정보 스카르두에서 트레킹 에이전시를 하는 굴람(43)은 8월까지 발토로 빙하를 찾은 여행객은 1000명 정도라고 했다. 이 숫자는 매년 에베레스트 등정을 목표로 베이스캠프에 몰려드는 인원과 비슷하다. 그만큼 희소한 여행이다. 접근도 쉽지 않다. 파키스탄 수도 이슬라마바드(Islamabad)에서 스카르두까지 차로 30시간, 여기서 다시 아스콜리까지 한나절 차를 타야 한다. ‘M투어(02-773-5950)’ 등 전문 여행사에서 발토로 여행상품을 내놓고 있다. 6~8월 여름에만 진행하며, 3~4주 일정으로 비용은 500만~700만 원이다.
[출처: 중앙일보] 히말라야 14좌 베이스캠프를 가다 <3> K2 (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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