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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상고집 2016. 7. 14. 13:17

이 문서는 타이완 지구를 실효 지배하는 국가로 1970년대 이전까지 중국 혹은 자유중국으로 불리던 국가에 관한 것입니다. 이 나라가 통치하는 지역(섬)에 대해서는 타이완 문서를, 다른 뜻에 대해서는 중화민국 (동음이의) 문서를 참조하십시오.

 

중화민국(중국어 정체: 中華民國, 주음부호: ㄓㄨㄥㄏㄨㄚˊㄇㄧㄣˊㄍㄨㄛˊ)은 동아시아에 위치한 공화국이다.

1912년 신해혁명 이후 중국 대륙에 세워진 공화국이다. 건국 초기에는 내분과 외침 등으로 인해 불안하였고, 1949년 국공 내전으로 영토의 상당 부분을 중화인민공화국에게 잃어 타이완 등 몇 가지 도서 지역만을 통치하는 상태로 현재에 이른다. 정식 국명은 '중화민국'이나, 대외적으로는 '타이완'이 병기되거나 국명을 대체하는 경우가 많다.

 

중화민국은 1912년 쑨원 신해혁명으로 청나라를 멸망시키고 세워진 아시아 최초의 공화국이며, 중화민국 헌법은 정치적인 진통을 겪다가 1947년에서야 공포되었다. 국공 내전  1949년 10월 1일 마오쩌둥을 위시한 중국 공산당 중화인민공화국의 건국을 선포한 이후에 기존의 중화민국 국민당 정부는 타이베이 시로 이전했으며(국부천대), 중화민국의 실질적인 영토도 타이완(타이완 성 포함) 및 푸젠 성 일부로 축소되었지만 현재까지 안정적으로 국가를 유지해오고 있다.

현재 남아있는 중화민국의 영토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타이완 17세기 청나라 푸젠 성에 속했던 지역으로, 1885년에는 푸젠 성으로부터 분리된 타이완 성이 설치되기도 하였다. 그러나 1894년 청일 전쟁에서 청나라가 패배하였고, 이로 인해 체결된 시모노세키 조약을 통해 만주, 펑후 제도와 함께 일본 제국에 할양되었다. 제2차 세계대전의 결과로 1945년 만주 타이완, 펑후 제도를 중화민국의 영토로 수복하게 되었고, 1947년 공포된 중화민국 헌법에 따라 타이완 성이 다시 설치되었다.

1949년 중국 공산당과의 국공 내전의 영향으로 중국 국민당 난징 시에 있던 중화민국 정부를 타이베이 시로 이전[1]하였고, 1955년을 기해 중국 본토에 대한 통치권을 완전히 중화인민공화국에 빼앗김에 따라 중화민국 정부 소재지인 타이완은 더 이상 중국의 변두리 지역이 아닌 중화민국의 중심 무대로 변모하게 되었다. 이런 연유로 이 나라는 통상 타이완(臺灣, Taiwan; 대만)으로 불리기도 한다.

1949년 이래 국공 내전을 계기로 중화민국은 이미 국공내전에서 패한 채 망명되었고, 따라서 이 나라와 중국 대륙에 있는 중화인민공화국과의 관계를 흔히 양안이라고 일컫는다. 중화인민공화국은 1949년에 중화민국이 멸망하였으므로 중화민국이 가진 모든 권리의 승계를 주장하고 있으며, 반대로 중화민국은 중화인민공화국 중국 공산당의 반란으로 세운 불법 정권으로 간주하여 본토 수복을 입장을 밝히고 있다. 그러나 중국의 재통일에 관한 문제는 타이완 독립 세력까지 존재하고 있어 더욱 복잡한 양상이다.

 

정식 국호는 중화민국(中華民國)이며, 자국 내에서는 타이완(台灣)이라고 부른다. 중국(中國)이라는 명칭은 사용하지 않는다. 또 영어로는 Republic of China, 약칭은 ROC이다. 그러나 1971년 중화민국이 유엔 회원국 지위를 잃은 이후 중화인민공화국 중국으로 부르는 빈도가 훨씬 많아지면서, 통상적으로는 중화민국의 현재 남아있는 영토 중에서 가장 중심적인 지명을 따서 타이완(대만, 영어: Taiwan, 중국어(타이완): 臺灣)이라고 부르는 일이 더 흔해졌다. 과거 냉전시절 미국이나 대한민국 등 친서방 국가에서는 중화인민공화국  중공(中共, Communist China)과 구분하기 위하여 자유중국(自由中國, Free China) 또는 중국(中國, China)이라고도 불렀으나 탈냉전 이후부터는 빈도가 감소하였다.

중화인민공화국 하나의 중국 원칙을 주장하며 타이완에 대한 영유권을 주장하고 있으며 중화민국 정부를 인정하지 않고 있다. 1983년 6월 26일, 덩샤오핑 이론에 따라 중화인민공화국 타이완 특별행정구(中華人民共和國台灣特别行政區)[2]라는 이름을 제시하였고, 타이완 지구 홍콩, 마카오와 같은 자국의 특별행정구처럼 간주하고 있다. 이런 중국의 압력에 의하여, 중화민국은 중화 타이베이(Chinese Taipei, 中華臺北 또는 中華台北)라는 별칭을 1980년대부터 올림픽 등의 국제 대회나 국제기구 등에서 사용하고 있다. 단, 세계 무역 기구(WTO)에서 중화민국의 가맹 명칭은 타이완·펑후·진먼·마쭈 개별관세영역(臺灣·澎湖·金門·馬祖 個別關稅領域; Separate Customs Territory of Taiwan, Penghu, Kinmen and Matsu; 台澎金馬個別關稅領域)이다.

2008년 6월 4일 어우훙롄(毆鴻煉) 중화민국 외교부장은 국제기구 등에서의 '중화 타이베이(Chinese Taipei, 中華臺北)'를 적극적으로 사용할 방침이라고 밝혔다.[3] 반면 중화민국 감찰원에서는 중화민국 행정원의 정부 문서에서 ‘대만’의 사용 빈도가 높아진 것을 지적하였으며 ‘중화민국’이라고 명시해야 한다고 밝혔다.

 

1911년 우창 봉기를 계기로 신해혁명이 일어났다. 혁명에 참여한 단체들은 손중산을 임시 대총통으로 삼았으나, 위안스카이에게 대총통 자리를 양보하였다. 그러나 권력욕에 가득 찬 위안스카이 중화제국을 선포한다. 일본 제국이 요구한 21개조 요구를 계기로 5·4 운동이 일어났다. 이를 계기로 위안스카이는 제정을 폐지하였으며, 대총통 자리에서도 물러났다. 손중산과 장제스를 중심으로 한 중국 국민당 중국 공산당과 손을 잡고 광저우 시에 새로운 혁명정부를 수립하였다. 이후 북벌 과정에서 장제스 상하이 쿠데타를 일으켜 공산당원을 축출했다.

 

내전으로 분단된 이래 이념을 달리한 양 정부는 하나의 중국 원칙을 고수하며, 각자 중국을 대표하는 유일한 합법정부라고 주장하고 있다.

1945년 10월 25일에 창설된 유엔에서 중화민국은 '안전보장이사회 상임이사국' 지위를 가진 주요 회원국이었다. 그러나 국공 내전으로 인해 중국 공산당이 건국한 중화인민공화국을 지지하던 당시의 공산주의 국가들은 “유엔 헌장 서명국이자 제2차 세계 대전 승전국인” 중국의 법통은 중화인민공화국에게 승계되었다고 주장하였다. 유엔 1971년 10월 25일 개최된 총회에서 표결하여 2758호 결의가 채택되었고, 중화인민공화국은 중화민국이 가지고 있던 유엔 내 중국 대표의 모든 권리와 지위를 취득하였다. 유엔을 탈퇴한 중화민국은, 이 결의 채택으로 말미암아 유엔 내부뿐만이 아니라 국제적으로 중화민국에게 불리한 조건에 놓이는 상황을 피할 수 없게 되었다.

반면 타이완 지역의 본성인들의 정치적 영향력이 점차 확대됨에 따라, 기존의 중화민국이 아닌 타이완 공화국을 건국하려는 움직임이 등장하였다. 특히 이러한 움직임은 민주진보당 천수이볜이 야당 출신 후보 중 최초로 총통에 집권했을 때 급진하였으나, 중국 국민당 마잉주로 정권이 교체되고 전임 총통인 천수이볜이 부정비리에 휩싸여 구속되는 등의 사건을 거치면서 이러한 탈중국화 운동은 지지도가 다소 감소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