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쪽에서 본 아침의 에베레스트. 이런 깨끗한 사진은 하늘의 축복이 있어야 겨우 찍을 수 있다.
8848m냐 8850m냐는 논란이 많은데, 일단 최근의 GPS 측량 결과로는 후자가 실제 높이에 근접한 값이라고 한다. 다만 눈과 얼음에 의해 일정 정도의 오차는 난다고 하니 대충 이 정도 높이라고만 알아두자. 중국에서 측량한 결과를 인용하자면, 정상의 암석부의 높이가 8845미터, 그 위에 3~5미터 정도의 녹을 일이 없는 얼음층이 덮여있다고 한다. 그리고 대륙붕의 이동으로 인해 원래 시간이 가면서 미세하게 조금씩 높이가 높아진다. 단, 해수면 아래부터 재면 하와이 마우나케아가 더 높고, 지구 중심부터 재면 에콰도르의 침보라소 산이 더 높다. 가장 높은 산이라는 것은 어디까지나 해수면을 기준으로 가장 높은 산이라는 의미다.
네팔어 명칭은 사가르마타(सगरमाथा, 하늘의 이마)이며, 티베트어 명칭은 초모랑마(ཇོ་མོ་གླང་མ, 세상의 어머니). 중국에서는 티베트어 명칭을 음차해 주무랑마 봉(珠穆朗玛峰)이라 한다. 다만 이후에 근대적인 측량법으로 이 산을 측량한 영국의 측량사 조지 에버리스트(George Everest)의 이름을 따서 에베레스트 산으로 유명해졌다.
세계에서 가장 이름이 널리 알려진 산이기도 하나 등정 난이도는 생각외로 낮다. 산세나 주변 지형 자체가 비교적 등정하기도 쉽고[3] 타이틀 때문에 워낙 여러 사람들이 올라가서 길도 훤한 데다 등정하기 쉽도록 시설같은 것도 잘 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래도 북한산보단 안전하다. 북한산이 에베레스트보다 사망자가 더 많은건 비밀
하지만 올라가기 쉽다고 하는 이 산조차도 많은 사람들이 목숨을 잃는다는 점을 잊지말자. 고산병을 비롯하여 거대한 강풍은 전문가들도 고전하기 일쑤이며, 2011년까지만 해도 전세계에서 1000명이 넘는 사람이 여길 오르다가 영원히 살아서 내려오지 못했으며 또한 도중에 몸이 아파서 병원으로 가던 도중 죽은 사람도 따로 또 많다. 참고로 2000~2010년까지만 해도 여기에서 등산 도중 목숨을 잃은 사람이 60명이 넘는다. 등반 또는 하산 도중에 죽은 사람들의 시신은 회수하기 어려워 사망한 자리에 방치되고,[4] 이후 산을 오르는 사람들에게 일종의 지표와도 같은 역할을 한다고 한다. 고도가 높아 춥기 때문에 시신이 부패하지 않고 미라화 되거나 반쯤만 부패하거나 풍화되어 있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시신 사진들이니 주의할 것!
우리나라도 2004년 계명대학교 등산부팀이 여기 등정에 도전했다가 산악인 박무택, 장민, 백준호 3명[5]이 끝내 살아 내려오지 못했다. 선배이던 엄홍길이 1년 뒤에 위에 언급된 3인의 시신을 찾아오려는 휴먼원정대 프로젝트를 진행[6][7]한다. 원정대는 실종자 2인은 끝내 찾지 못하고, 위치가 파악된 박무택의 시신을 운구하는 데 집중한다. 마침내 정상부근에 도착한 원정대가 박무택의 시신을 떼어내고 로프를 이용하여 십여 미터 밑으로 옮기는데에는 성공하나, 얼어버린 시신의 무게가 상당하고 기상이 급격히 악화되어 원정대원들의 안전이 위협되는 상황이 되자 더 이상 진행하지 못한다. 결국 등반대장이던 엄홍길의 결정으로 시신을 전망이 좋은 양지로 옮기고 그 위에 돌무더기를 쌓아 간소한 돌무덤을 만들어주고 대원들은 하산한다. 대원들은 유가족들이 챙겨준 유품들을 태우며 노제를 지내는 것으로 프로젝트를 마무리 했다.[8] [9] 그 밖에도 2007년에도 산악인 이현조, 오희준이 등반도중 낙석으로 인해 목숨을 잃었다. [10] 최근에는 2013년에 산악인 서성호가 8,050m지점에서 취침도중 고소증과 탈진으로 인해 사망했다. 이처럼 많은 경험과 기술이 있는 전문산악인들도 위험한 곳에서, 일반인들에게 닥칠 수 있는 위험은 더 이상 설명이 필요없다.
돈 많고 산은 오르고 싶은데 체력은 없는 사람들을 위해서 약 5만 달러 정도의 비용을 지불하면 정상까지 운반해주는 상업등반대도 있다고 한다. 등반 전문 사이트의 평가에 따르자면 높이가 가장 큰 문제, 사람들이 너무 많이 와서 붐빈다는 것도 난이도를 높이는(...) 요인이라고 한다. 2000년대 후반부터는 일년에 에베레스트 등정자가 수백명 단위이며, 한 여름 등산시즌에는 베이스캠프에만 상업등반대 1000여명이 운집하며 하루에도 20여개팀씩 정상에 오른다고 한다. 많은 사람들이 상상하는 산을 향한 숭고한 도전 따위는 개뿔...심지어 세르파가 돈받고 정상에 오른뒤 하산도중에 힘들어하는 고객을 버리고 내려온 사례까지 있다.<에베레스트의 진실> by 마이클 코더스
오히려 2등인 K2가 등정 난이도가 훨씬 높다. 진짜 산을 좋아하는 산악인들은 K2 등정을 훨씬 높게 쳐주며, 이 쪽은 엄청난 난이도 때문에 일반인의 상업등반도 거의 없다고 한다. 1등만 기억하는 더러운 세상.
게다가 이것 때문에 등산가들이 버린 쓰레기로 인한 환경 오염 문제도 심각하다. 정상 등정을 위한 최종 캠프를 보통 사우스콜에 설치하는데, 여기에 버려진 산소 봄베의 숫자가 엄청나다고 한다. 이게 얼마나 심하냐면 최근 통계에서 에베레스트의 높이가 약 2m정도 올라갔다고 하는데, 이유가 등반가들이 버린 산소통이 쌓여서(...). 덕분에 네팔 정부에서 청소비 명목으로 돈을 두둑히 받아서 여기 가려면 5만 달러 가까운 상당한 돈을 내야한다. 그 밖에도 입산비라든지 여러 명목으로 추가로 네팔 측이 돈을 받는데 한 사람당 10만 달러에 달한다. 덕분에 이 돈 안내고 올라가는 불법 등반이 꽤 많다. 물론 걸리면 추방당하고 재입국하자면 벌금과 같이 돈을 더 많이 내야하기에 어려움이 많다. 8천미터 14봉을 모두 올라간 김재수가 2번 불법등반 했다고 한다.
때문에 전문 등산가들이 산에 오를 때 잘 보면 입고 있는 등산용 옷에 온갖 회사 상표가 가득 달려있는 것도 바로 입산비라든지 여러 자금을 보태주는 스폰서때문이다. 그 밖에도 입산비를 안 내고 올라가는 방법이 있는데 바로 청소등반대에 자원하면 된다. 이들은 입산비가 면제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말그대로 등산하면서 산에 있는 쓰레기를 가지고 내려오는데 그만큼 힘도 들고 더 위험할 수도 있다.
오랫동안 네팔의 독점으로 돈을 벌어들였다. 냉전 이전에는 티베트를 통해서도 많이 갔으나 중국이 티베트를 먹으면서 이 길이 막힌 적이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지금도 네팔이 여전히 에베레스트에 대한 입산비를 많이 차지한다. 중국이 개방해도 산 위치가 네팔 쪽에 더 많이 몰려서 사람이 몇 배는 더 많이 오기 때문에 네팔이 여전히 많은 입산비를 챙기고 있다.
결국, 문화대혁명과 죽의 장막이라는 폐쇄적인 중국 시절, 에베레스트는 네팔을 통하여 세계에서 왔기에 네팔의 상징으로 자리를 잡아서 이를 두고 중국인들은 아쉬워한다.
이 둘이 동시에 꼭대기에 발을 닿으면서 동시 등정했다고 한다. 덕분에 두 사람 모두 우리 둘이 동시에 등정했으니 어느 한 사람만 언급하지 말아달라고 말하곤 했다. 그런데 나중에 힐러리가 식구들에게 밝히는 바에 의하면 원래 경쟁적으로 서로 등정했더라면 노르가이야말로 세계 최초로 에베레스트에 오른 사람이라고 했다. 그가 늘 앞서 있었고 마음만 먹었더라면 그가 앞서 꼭대기에 오를 수 있음에도 늘 나를 배려했고 같이 오르자고 도왔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래서 그는 나중에 셰르파의 권익 보호에 앞장서서 나섰으며, 셰르파야말로 등산가의 친구이자 분신으로서 대하라는 말을 자주 했다고 한다. 당연히 노르가이와 친한 친구로 지냈으며 노르가이가 먼저 죽을 때도 장례식에 직접 참가하여 슬피 울었다.
최초는 아니지만, 1978년에 산소 봄베 없이 처음 등정에 성공한 오스트리아계 이탈리아 등반가 라인홀트 메스너도 산악인들 사이에는 상당한 유명인이다. 메스너는 14개의 8000미터급 봉우리를 최초로 완등한 사람이기도 하다. 다만 칸첸중가 등정을 두고 오은선의 증거부족을 문제삼지 않고 대충 얼버무렸다는 비난을 듣고 있다.
이전에도 1924년에 영국의 조지 말로리와 앤드루 어빈이 최초로 정상등정에 도전하여 등정에는 성공하였지만 돌아오지 못하고 말았……던 것인지, 아니면 올라가다 실패한 것인지는 오랫동안 산악계의 뜨거운 논란거리였다. 현재에는 등정에 실패했다는 설이 유력하다. 이들이 세컨드 스텝을 오르려고 시도하는 장면이 베이스 캠프에서 목격된 후 실종되었는데, 일반적으로는 그 당시의 장비와 등반 기술로는 세컨드 스텝을 돌파할 수 없었으리라고 본다. 게다가 그들이 등정에 성공했으면 무언가 흔적을 남겼을 가능성이 높은데 정상에 그들이 남긴 이렇다할 흔적역시 발견되지 않은점 등으로 봐서 세컨드 스텝 돌파중 추락했을 가능성이 높다.참고 블로그 영국은 둘의 유해를 찾기 위한 수색대를 매년 파견해왔으며, 말로리의 유해는 실종된 지 75년 만인 1999년에 영국 시몬스 등정대가 산 북쪽의 비탈에서 발견했다. 사실 1975년 중국인 왕홍보가 에베레스트 등정 도중 오래된 영국인 시체를 발견했다고 말했지만 왕홍보에게 이 소식을 듣은 일본인 등산가 하세가와와 왕홍보도 등정 도중 죽는 바람에 그다지 알려지지 못했다.[15]
카메라도 발견되었지만 아쉽게도 필름이 엉망이라서[16] 결국 이들이 산에 올라갔는지는 영원한 수수께끼로 남게 되었다. 참고로 조지 맬러리는 "왜 산을 오르려고 하는가?"라는 질문에 "거기에 산이 있으니까(Because it is there)"라고 대답한, 산악사 사상 가장 유명한 명언을 남긴 인물이다.[17] 그런데 이 말 자체는 신문기자가 귀찮게 자꾸 물어보니까 신경질적으로 대답하다 나온 것이라고 한다.(…)
여담이지만 산 남쪽 계곡에 위치한 Lukla 공항은 착륙이 매우 위험하기로 유명한데, 흔히 "에베레스트의 관문" 이라고도 불린다.
2차원 매체에서는 가끔 여길 아무런 장비 없이 맨몸으로 등반하는 캐릭터도 나온다. 고르고13이라든가 빌헬미나라든가 아사쿠라 미키히사 등등.[19] 참고로 맨몸까지는 아니더라도 '무산소 등정'이라 하여 산소탱크가 없이 에베레스트와 같은 고산을 등정하는 산악인들이 실제로 있는데 당연히 난이도가 매우 높다. 최초로 에베레스트를 무산소로 등정한 사람은 라인홀트 메스너와 페터 하벨러로 1978년 5월 8일에 무산소 등정에 성공하였다.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에서는 쿤라이 봉우리에 네베레스트로 패러디되어 나왔다. 씁쓸한 얘기지만, 이 에베레스트를 패러디한 네베레스트 밑에는 셰르파를 패러디한 그루멀이라는 종족의 마을이 있는데, 선량한 사람들이 사는 마을이라기보단 돈벌이하는 NPC들이 그득한, 상술에 찌든 마을에 불과하고 아예 유명한 사기꾼 NPC인 '그립타'가 사기 광고를 팍팍 때리면서 호객행위를 하고 있다.[20] 순수함을 잃은 에베레스트의 현실을 냉정하게 패러디하는 부분.
2005년에는 에베레스트 산정에 헬리콥터가 이착륙하여, 세계 최고고도에서의 이착륙이라는 (절대 깨지지 않을) 기록을 경신하기도 했다. # 다만, 네팔 정부에선 여러가지 이유를 들어 인정하지 않고 있다.
엄홍길이 쓴 책에 의하면 기상이변을 에베레스트에서 절실하게 느낀다고 한다. 80년대 초반만 해도 자동차 구경하기 힘든 네팔 산가 마을이 2000년대 와선 자동차가 넘치고 쓰레기도 많이 버리면서 에베레스트 및 히말라야 고산 날씨와 기온이 제멋대로 달라졌다고 한다. 더 나쁘고 엉망으로 변하면서 등정이 더더욱 힘들어진다고 회술했다.
결국 보다못한 네팔정부가 2014년 4월부터 등산객 한명당 8Kg의 쓰레기를 의무적으로 가지고 내려오도록 규정을 신설할 예정이다.
간혹 가상 매체에서는 악역 인물이 저 산을 패러디 한거나 실제를 그려 놓은 것에 있는 눈을 모두 녹여 세상을 물바다로 만드는 정신이 나간짓을 저지르는것이 간혹 나오기도 한다. 천재소년 지미 뉴트론의 핀버 박사는 이런 짓을 저지르다가 실패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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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에베레스트 산맥은 대륙판이 만나는 경계에 위치해 있어서 지금도 계속 높아지고 있다.
- [2] K2가 에베레스트보다 사실은 더 높다는 떡밥은 유명하지만, 당연히 사실이 아니다. 일단 이 떡밥의 시초는 1986년에 나온 발표로 오류 때문에 곧바로 정정되었지만 기레기들한테는 그런 거 없다. 기존에 측정된 값이 잘못된 지오이드(geoid, 해발 0미터의 기준이 되는 타원체에 가까운 삼차원 도형)를 썼기 때문에 틀렸다느니 하는 루머도 있는데, 지오이드 측정을 아무리 잘못 했어도 전 세계를 통틀어 지오이드가 찌그러진 정도는 200미터를 못 넘는다. 일단 이 루머가 사실이라면 GPS 기기를 들고 등정하는 수많은 산악인들은 도대체 뭐란 말인가... (구글 어스로 확인해 볼 수도 있다.) 지오이드 보정된 GPS 측정에서는 K2와 에베레스트의 높이 모두 알려진 높이에서 10미터 안팎을 오르내리는데 이는 GPS 자체의 오차에 가까운 수준이다!
- [3] 물론 어디까지나 다른 8000미터 고봉들 기준이니 오르기 쉽다고 함부로 도전하지는 말자. 어쨌거나 세계에서 오르기 어려운 산들 중 하나다. 당장 동네 뒷산도 헉헉거리는 사람들에게는 양희은 씨의 노랫말마냥 '저 산은 내게 오지마라 오지마라 하네'...
- [4] 일단 사람의 체중도 체중이지만, 이렇게 추운 고산지대의 경우 방치된 시신이 엄청 무거워진다. 남극에서 사망한 로버트 스콧의 시신도 비슷한 이유로 가져오지 못하고 현지 매장하였다.
- [5] 3인의 사망경위는 다음과 같다. 박무택과 장민 2인이 정상등정에 성공하고 하산하던 해발 8,500m 지점에서, 장민은 탈진하고 박무택은 설맹으로 앞을 볼 수 없게된다. 결국 박무택은 후배 장민을 먼저 내려보내고, 산소없이 밤을 지샌다. 그러나 장민은 하산도중 실종된다. 이를 무전을 통해 알게된 베이스캠프에서 백준호와 셀파 한명이 박무택을 구조하러 가지만, 박무택은 동상이 심하고 정신이 혼미한 상태여서 몸을 제대로 가누지 못한다. 결국 셀파는 먼저 하산하고 백준호는 박무택의 곁을 지키다가 홀로 하산하게 된다. 그러나 백준호마저 하산도중 실종되어 세명이 사망하게 되는 비극이 벌어진다.
- [6] 수십명의 전문산악인들이 70일 가까이 진행한 대형프로젝트였다. 경비마련을 위해 여러 기업과 언론사에서 스폰을 받게 되고 이들이 동행하면서 규모가 더욱 커졌다.
- [7] 유래가 없는 시도였다. 세계적인 등산가인 라인홀트 메스너조차도 불가능이라고 같이 산에서 죽어 묻혀질려는 것이라고 고개를 가로지었다. 참고로 메스너도 아우 귄터 메스너(낭가파르바트 등정 도중 사망)를 비롯하여 많은 친구와 동료를 여러 히말라야 산에서 잃었다.
- [8] 위의 내용은 MBC에서 동행취재한 2부작 다큐멘터리 '아! 에베레스트'에 잘 나와있다.
- [9] 참고로 이 휴먼원정대도 희생자를 냈는데, 격려차 헬기로 캠프에 방문한 전문 산악인 한 사람이 고산병으로 급사했다.
- [10] 이 두 사람을 잘 알던 만화가 허영만도 당시 《식객》 연재를 잠깐 멈췄으며 단행본 19권 바지락 칼국수 에피소드 후기에서도 언급하고 있다.
- [11] 엄홍길 대장이 2005년에 에베레스트를 등반할때 늘어선 사람들을 보며 개탄하고는 옆의 빙벽을 타고 슥슥 혼자 올라가 버렸다.
- [12] 남동릉 노멀루트의 성수기 때 사진을 보면 아주 한줄로 줄을 주르르르륵 서 있다.
- [13] 1919~2006 뉴질랜드 5달러 지폐에 얼굴이 들어갔다. '지식채널 e'에서 '초몰룽마의 두 이방인' 편에서 백인이지만 영국인이 아니란 이유로 차별받던 힐러리의 처지를 소개한 바 있다.
- [14] 1912~1986 이 사람도 네팔인 셰르파 사이에서는 영웅으로 추앙받는다. 우습게도 그의 국적을 두고 네팔 말고도 당시 인도와 중국과 티베트가 서로 자기들 나라 사람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물론 국제적으로 네팔 사람으로 더 알아준다. 참고로 그의 아들도 네팔에 살면서 "아버진 네팔 사람이다"라며 다른 나라의 주장을 무시했다.
- [15] 그래서 세월이 지난 뒤 일본 소설가 유메마쿠라 바쿠는 <신들의 봉우리>라는 소설을 써서 말로리 시체를 일본인 등산가 하부 조지가 발견한다는 가상 설정을 넣어 쓰기도 했다. 이 소설이나 이걸 만화로 그린 다니구치 지로만화 모두 한국에서도 정발되었다.
- [16] 현상하지 않은 필름은 서서히 화학물질이 변질되면서 상이 흐려진다. 유메마쿠라 바쿠는 신들의 봉우리에서 카메라가 없었다고 오류를 저지르며 혹시 왕홍보가 가져간 거 아니냐는 무리수적인 서문을 쓰고 있다. 이에 대하여 중국에선 무척 불쾌해했는데 왕홍보는 정말 시체를 대충 보고 올라갔으며 그게 말로리인지 죽을때까지 아예 몰랐다고 한다.
- [17] 그런데 이 말을 힐러리가 한 말로 아는 이들도 많으며, 책자나 여러 글귀에서도 그렇게 표기한 게 꽤 있다. 훗날 영국군 공군 대장이 된 트래퍼드 리맬러리는 이 사람의 동생.
- [18] 1948년생. 1979년 미국 매킨리 산을 등정하는데 성공했으나 하산 중 사고로 사망한다.
- [19] 엄밀히 말해 고르고13은 맨몸으로 등반하지 않았다. 전문 산악인에게 훈련을 받고 각종 장비를 지참하고 있었으며, 그나마도 등반 도중 전투를 하는 바람에 우연히 발견한(의뢰를 한 승려가 '예언'을 하긴 했지만) 조난당해 죽은 등산인의 캠프에서 산소탱크를 발견하지 못했으면 죽을 뻔 했다.
- [20] 아무리 봐도 효과가 없는 게 뻔한 아이템을 엄청난 값에 팔고 있는 웃기는 트롤 NPC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