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은 높은 산 정상에 흩어져 있는 거대한 돌들을 보며 신들이나 외계인들이 만든 불가사의한 작품이라는 경이로움을 느끼게 된다
고대 거석문화를 숭배한 부족과 이땅에 살았던 후손들(발해민족 등)이 피단산을 성스로운 장소로 여기며 하늘에 제사를 지내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Гора Пидан (Ливадийская) находится в Шкотовском районе Приморского края и является одной из главенствующих гор Южного Сихотэ-Алиня
При виде этих огромных валунов на вершине чувствуется вся таинственность горы и возникают мысли о том, что это чудеса сотворены высшими силами или пришельцами других миров, но никак не человеком.
C древнейших времен племена мегалитической культуры, их потомки (например, народ государства Бохай) считали г. Пидан священным местом и проводили на ее вершине различные религиозные ритуалы.
과연 강제로 일본인들에 의해서 한국인들이 이주한 것일까요?
실제로 이 배는 수십척이 아직도 블라디보스톡 박물관에 보관되고 있다고 한다.
국내 어느 박물관에서도 찾아 볼 수 없는데....
러시아의 역사를
러시아에서 가장 먼저 등장한 국가는 ‘루시의 나라’라고 불린 동슬라브인의 국가가 있었다. 키예프가 그 중심이었으므로 ‘키예프러시아’라고도 한다.
키예프대공국이 몰락하여 분열한 후 짧은 기간의 블라디미르 대공국 시대에 이어 모스크바 대공국이 전면에 대두한다.
분열과정에서 동슬라브인은 언어의 통일성을 잃어버리고 모스크바 중심의 대러시아인, 키예프 중심의 소러시아(우크라이나)인, 서쪽의 백러시아(베라루시)인의 셋으로 갈라졌다.
이후 모스크바 대공국이 힘을 길러 17세기에 폴란드-리투아니아의 지배하에 있던 우크라이나를 합병하고, 그보다 조금전 16세기 말엽부터 시베리아진출을 시작하면서 대제국의 기반을 닦는다.
이때까지는 ‘러시아’라는 이름을 쓰지 않고 ‘루시’라는 옛 이름을 국명으로 사용했다.
러시아라는 이름이 정식 국명으로 채택된 것은 18세기 초 표트르 대제 시대에 러시아 제국이 성립하면서다.
이때 백. 청. 적의 삼색기가 이 나라 배에 꽂는 깃발로 사용되기 시작했다.
당시 러시아 제국은 우크라이나와 발트 지방까지를 아우르는 유럽 러시아와 아시아의 시베리아 지방을 지배했다.
이후 제국이 팽창하면서 핀란드와 폴란드, 카프카스지방, 중앙아시아, 극동 연해주 지방을 제국의 깃발 아래 복속시켰다. 러시아제국이 최대판도를 이룬 것은 19세기 말부터 1914년 1차세계대전이 일어나기 직전까지다.
1917년 러시아혁명으로 제국이 붕괴하고 러시아 사회주의 소비에트 공화국이 선포된다. 내전이 소비에트의 승리로 끝난후인 1922년 러시아 공산당이 지도하는 4개 소비에트공화국, 즉 러시아. 백러시아. 우크라이나. 자카프카스 연방의 대표들이 모여‘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 연방’(소련)을 결성한다.
이어 중앙아시아의 소비에트화, 극동공화국의 병합으로 영토가 확장되고, 마지막으로 1940년 발트 3국의 병합, 루마니아령 베사라비야(몰다비아)의 점령으로 소련은 15개 공화국의 연방이 되었다.
그후 최근에 페레스트로이카의 진행 속에 1991년 쿠데타와 대중봉기로 소비에트연방이 해체되고,각국이 독립을 선언한 후 독립국가연방(CIS)을 결성했다.
[출처] 1.러시아의 국가 변천사, 대지와 자연 |작성자 주샘
러시아의 불라디보스톡 (Vladivostok) 점령
동방을 점령하라'는 뜻을 지닌 블라디보스톡은 러시아의 중요한 항구 도시이다. 1860년 6월 20일에 창립되었고 1880년에 시의 명칭을 부여받았다. 표트르 벨리키(포트르 대제)만을 아루르스키만과 우수리스키만으로 나누는 좁고 긴 산악 반도의 남쪽 끝에 위치하고 있으며 대시베리아 횡단열차의 종착역으로 개인사업과 국제 무역, 관광이 급속히 발전하고 있다. 이 곳에서는 국제 심포지움과 학술 회의가 자주 열리고,태평양 함대의 모함이기 때문에 세계 각국의 해군함들이 친선 사절로 온다.
지금은 거의 흔적이 남아 있지 않지만 시내 중심에 예전에 일제 시대 때 한국인들이 이주해서 산 장소가 있으며 그곳을 지금은 '페르바야 레치카'라고 부른다. 연해주와 블라디보스톡은 한국 근대사와 많은 관련을 맺고 있어서 지금도 각 대학의 도서관 문서 보관소에는 이와 관련된 기록이 많이 남아 있다. 시차는 GMT보다 10시간 빠르고 모스크바보다는 3시간 빠르다. 따라서 우리나라보다 1시간 빠르다
블라디보스톡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가까운 러시아 땅으로 북한의 최북단과 인접해 있는 항구도시다. 이곳은 극동지구 최대도시로 인구가 65만여명에 이르며 19세기말부터 20세기초 러시아의 극동정책에 의해 생겨난 곳이다. 군항, 산업항, 어항 으로서의 기능은 물론이고 조선, 수산가공등 공업중심지로서도 중요한 위치를 자지하고 있다. 러시아혁명 직후인 1918-1922년에 걸쳐 일본군의 `시베리아 출병'이라 불리는 점령하에 수많은 러시아 주민들이 무고한 피를 흘려야만 했던 아픈 상처를 가지고 있다.
[출처] 불라디보스톡 (Vladivostok) |작성자 조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