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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질랜드 남섬

정상고집 2012. 6. 20. 23:44

남알프스 동쪽 산록 길

크라이스트처치에서 렌터카를 몰고 남섬의 남북을 잇는 남알프스산맥의 동쪽 산록을 달리면서 여행객은 뉴질랜드 여행의 참맛을 비로소 알게 된다. 황량함과 한적함. 뉴질랜드는 영국 호주 일본 홍콩과 더불어 몇 안 남은 좌측 주행의 나라다. 

뉴질랜드에서 가장 ‘경치 좋은(scenic) 도로’라는 이 길인데도 양방향 간에 달리는 차량이 별로 없어 우측 주행의 습관에 젖은 여행객은 부지불식간에 반대편 차선으로 달리게 되는 것을 조심하라고 교포들이 일러주던 이유를 알 만했다. 
4월의 햇볕은 눈부시고 바람은 강하고 들판과 산록은 때로 단조로워도 그 가운데를 전세낸 듯이 달리는 기분―한 치 사이로 비좁게 돌아가며 사는 데 익숙해진 한국사람으로서는 정말 오랜만에 그 한적함의 즐거움을 만끽할 수 있었다. 거기에 더해진 즐거움―그것은 때로 도로를 점령한 채 이동하는 양떼를 만나는 것이었다. 
양떼에 막혀 도로 한가운데 정차한 채 양치기와 양몰이 개가 양떼를 길 좌우로 몰아가는 것을 구경하는 동안 나 자신이 어느 영화 속의 한 장면으로 빨려 들어가는 듯했다.
남알프스산맥의 정상, 그러니까 뉴질랜드에서 제일 높은 산인 마운틴 쿡(Mt. Cook·3764m)까지는 약 4시간의 드라이브, 그중 1시간이 호수를 끼고 달리는 길인 것도 또 다른 즐거움이었다. 테카포와 푸카키라는 이름의 호수는 파란색도 물색도 아닌, 연한 옥색이었다. 만년설 빙하가 녹은 물이 빙하가 밀고 내려오면서 갈아놓은 광석에 반사된 것이라는 옥색은 불투명하면서도 신비했다.

 


 자연과 하나된 허미티지 호텔
마운틴 쿡을 정면으로 바라보는 산자락에 지은 호텔(허미티지)과 부대시설은 모두 산과 바위 색깔과 같은 진한 회색이었다. 
주위 환경에 튀지 않게 하려는 배려, 산 속 외딴 휴양지의 고즈넉함과 조용함은 과연 이곳이 뉴질랜드 최고의 관광명소인가를 의심케 만드는 치밀한 설정의 결과였으리라. 해발 700m의 호텔방 소파에 앉아 3764m의 눈봉우리를 바로 눈앞에 올려다보면서 망원경으로 살필 수 있는 이 ‘특전’이야말로 뉴질랜드가 여행객에게 허용한 이번 여행의 백미라고 할 수 있겠다.
마운틴 쿡에서 남섬의 최고 ‘미인’ 퀸스타운으로 가는 3시간 반의 길은 아득한 분지의 끝없는 들판을 가로지르는 또 다른 분위기를 선사했다. 양떼가 있는 곳도 있었고 푸른 풀들이 자란 곳도 있었다. 이곳에서는 땅을 3등분해 양떼가 풀을 뜯은 땅은 배설물을 비료로 삼아 다음해에 곡식이나 채소를 심고, 그 다음해는 휴경을 했다가 그 다음에는 풀을 심어 다시 양떼를 키우는 식으로 회전한다고 했다. 곡식과 양이 다 같이 살찌는 이유를 알 것 같다.

 감칠맛 나는 연어요리
뉴질랜드에 가기로 했을 때 기대했던 것 중의 하나가 양고기였다. 양고기의 본고장인 만큼 양고기를 쉽고 싸게 접할 수 있으리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사정은 달랐다. 식당 메뉴에 양고기는 없거나 드물었고 정육점의 양고기(램 찹) 값은 돼지나 소고기의 두 배 이상이었다. 어린 양의 고기인 램(lamb)은 수출하고 늙은 양(털을 10여회 이상 깎은)의 고기인 머튼(mutton)이 뉴질랜드사람들의 몫이라는 것이다. 털을 얻기 위해 양을 키우는 것인가, 고기를 얻기 위해 양을 키우는 것인가. 뉴질랜드는 이 문제의 대답을 그렇게 타협하고 있었다. 퀸스타운으로 가는 도로에 연어농장이란 팻말을 보고 들어갔다. 빙하 녹은 물로 키운 연어를 횟감, 훈제, 구이감 등으로 팔고 있었다. 얼음에 채워준 횟감을 일회용 간장, 와사비와 함께 샀다. 퀸스타운의 호텔방에서 보드카의 안주로 삼은 이 연어회는 서울 어디에서 먹은 연어회보다 맛이 훌륭했다.

 농부가 최고 부자인 나라
뉴질랜드의 부자는 그래서인지 농부 또는 농장주들이라고 했다. 최근 발표된 뉴질랜드 부자 180여명에 농장인(farmer)이 대부분을 차지했다고 들었다. 
광활한 땅을 가지고 그 땅을 유기적으로 경작하거나 활용하는 기업적 농장주들이 부자의 반열(?)에 오르는 뉴질랜드가 부럽기까지 했다. 그러나 여기에 또 다른 설명을 다는 사람도 있었다. 뉴질랜드의 농업 또는 농업 연관산업은 오래전부터 독점체제를 유지해왔다고 한다. 농업을 키우려는 정부의 정책적 배려가 있었겠지만 오늘의 시장원칙을 비켜가는 구조 덕분에 농장을 가진 사람이 부자가 된 것이라고 했다. 
‘반지의 제왕’을 찍은 뉴질랜드 전역 100여곳의 로케 현장 중 많은 부분이 더 풍광이 뛰어난 곳임에도 불구, 개인의 소유의 농장이라서 일반 여행객의 접근이 제한되고 있다고 했다.

 가을로 접어든 퀸스타운
퀸스타운은 파카티푸 호수에 자리한 ‘예쁜 휴양지’다. 한국사람에게 최근 잘 알려진 아름다운 호반의 도시와 같은 휴양도시이다.  남위 45도쯤에 위치한 퀸스타운은 이제 막 가을로 접어들고 있었다. 호수, 공기, 하늘 등 맑고 깨끗한 요소들을 여럿 지니고 있었고, 조용한 삶을 보내고 싶어하는 아름다운 마을로 형성 되어 있다. 
깨긋한 호수의 맑은 물을 중심으로 형성된 휴양지는 오래된 증기선으로 가보는 어느 목장의 양몰이쇼, 양털깎기, 동네 뒷산에 오르는 곤돌라(우리의 케이블 카) 등과 스키장과 골프장이 있고 그리고 아기자기한 쇼핑거리가 있다. 물론 뉴질랜드 남섬의 자랑거리인 밀포드 사운드라는 피오르드식 해안으로 가는 출발지로서의 기능이 있기는 하다. 그렇다고 해도 무엇이 이 인구 1만3000명의 마을을 연간 100만명에 이르는 관광객이 찾아와 4억뉴질랜드달러(2800억원)를 쓰고 가는 관광명소로 만들었을까. 자원을 최대한 활용한 기획이고 포장이고 홍보가 그 답이다. 그 정도라면 우리도 강원도 소양호나 다른 호수 주변에 그런 마을을 만들 수 있을 것 같다. 기본적인 요건만 갖췄다면 그 마을의 책임자와 주민 대표들도 이런 곳을 찾아 벤치마킹을 할 수도 있을 것이다. 말하자면 퀸스타운처럼 4층 이상 또는 호수의 전경을 막은 어떤 건축도 허용하지 않는 주민 서로간의 양보와 합의 정신을 말이다. 밀포드 사운드로 가는 관광버스(coach)의 생김새도 사람들의 주목을 끌고 선전자료가 된다. 의자를 약 20도 정도 창밖 쪽으로 비스듬히 틀어놓았고 좌석 위 버스 지붕 양쪽을 60㎝ 정도 유리로 만들었다. 밖과 위를 잘 볼 수 있게 한 것이다. 우리도 만들면 된다. 머리를 쓰지 않은 것뿐이다.

 천혜 자원을 활용하는 사람들
밀포드 사운드 역시 구경거리이기는 하지만 그것을 보러 지구의 거의 남쪽 끝까지 불원천리 찾아갈 정도인가는 보는 사람마다 생각이 다를 수 있다. 거의 수직적인 절벽과 바위산 사이를 바다가 강처럼 수십 킬로 들어와 있는, 거꾸로 말해 빙하가 산을 자르고 깎아 밀고 바다로 나간 피오르드식 해안은 노르웨이에서 많이 볼 수 있다. 그래서 밀포드 역시 그 자체가 거대한 장관이라는 것보다 있는 자원을 최대한 엮고 홍보해 구경거리로 만드는 노력의 결과라는 설명이 더 설득력 있다. 그런 관점에서 보면 밀포드 사운드 그 자체보다 밀포드로 가는 길―산과 들과 강과 구름 그리고 비온 뒤 사방에서 솟아난 폭포와 빽빽한 우림 등이 보다 뉴질랜드적이었다면 초행자의 성급한 평가일까?
뉴질랜드의 어느 원로 교포는 “뉴질랜드 뭐 볼 것 있나? 그저 풍광(風光) 하나지”라고 했다. 그렇다. 풍광―그것이 뉴질랜드의 대명사일 수 있다. 그러나 사람이 사람답게 사는 환경 중에서 먹는 것 빼고는 풍광이 중요한 요소가 아닐까. 살기 좋은 외국땅에서 사는 교포들은 흔히 “서울은 재미있는 지옥이고 이곳은 재미없는 천국”이라고 말을 한다. 내가 보기에 뉴질랜드에 사는 사람들은 재미보다 천국을 택한 것 같다. 그리고 그 천국 속에서 나름대로의 재미를 만들어가고 있었다.
사람들은 좋은 여행지를 평가할 때 다시 한 번 가보고 싶은 곳과 그곳에서 살았으면 하는 곳으로 나눈다지만 나는 뉴질랜드를 저 먼 곳에 건드리지 않고 놓아두었다가 가끔 마음이 꽉 막혔을 때 나 혼자 몰래 찾아가서 묵고 싶은 곳으로 간직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