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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unt Everest / 히말 14좌지도

정상고집 2009. 6. 16. 20:33

Mount Everest

세계에서 가장 높은 산인 에베레스트 산은 네팔과 티베트(중국) 사이에 경계가 분명하지 않은 국경을 이루며,대략 북위 28°, 동경 87° 지점에 솟아 있다.

불모지인 3개의 능선에서 2개의 정상인 에베레스트 봉(8,848m)과 남봉(8,748m)이 나란히 솟아 있다.


 

 

 

에베레스트 산은 대기권을 지나 산소가 희박한 성층권의 2/3 지점까지 솟아 있어 산소 부족과 강풍, 혹한 때문에 정상부의 비탈에는 어떠한 동식물도 살 수 없다.

비는 내리지 않고, 계절풍이 부는 여름 동안 눈이 내려 눈더미를 이룬다. 이 눈더미는 증발선(蒸發線) 위에 있기 때문에 보통 밑으로 흘러 빙하를 이루는 넓은 만년설 분지를 형성하지 않는다.

따라서 에베레스트 산의 빙하는 자주 일어나는 눈사태를 통해서만 형성된다.

주요능선으로 서로 분리된 산 측면의 빙상(氷床)은 겨울 동안 비교적 눈이 쌓이지 않는다. 

 

 

오래 전부터 그 웅장한 크기와 높이 때문에 초기에는 티베트어로 '초모룽마'('세계의 어머니 여신'이라는 뜻)라고 불렸었으며

1852년에 인도정부 측량국을 통해 지상에서 가장 높은 산으로 확인되었다.

 

한때는 '15호 봉우리'라는 명칭으로 불리기도 했으나 1865년 이후 이 산 측량에 활약했던 인도 측량국장을 지낸 영국인 관리

조지 에버리스트 경(1830~43 재임)의 이름 따서 현재의 이름으로 부르게 되었다.

정상부는 강설량, 인력(引力)의 변화, 빛의 굴절에 따라
고도가 달라졌기 때문에 정확한 고도에 대해 논쟁이 벌어지기도 했다.

지금 공인된 에베레스트 산의 고도(8,848m, 안팎으로 약간의 차이가 있음)는 1952~55년에 인도 측량국을 통해 확인된 것이다.

에베레스트 산을 오르려는 시도는
1920년 티베트 등반로가 열리면서 시작되었다.

그러나 남동쪽 능선과 북동쪽 능선에서 각각 3회(1951~52), 7회(1921~38)에 걸쳐 시도된 등정은 차갑고 건조한 공기, 거센 바람, 험한 지형, 높은 고도 등 때문에 실패 했었다.

 

 

에베레스트 산 정상 등정은 1953년 '왕립지리학회'와 '히말라야 공동 산악위원회'의 지원을 받은 한 원정대에 의해 마침내 이루어졌다.

이들은 특수절연 등산화 및 등산복을 착용하고 개폐회로 산소 공급장치, 휴대용 무전기 등의 장비를 갖추고 쿰부 빙폭(氷瀑)과 쿰부 빙하, 서쿰 빙하를 거쳐 로체 산과 그 정면에 있는 해발 7,986m의 바위 능선인 사우스콜까지 이르는 등반로에 8개의 캠프를 설치했다.
 

드디어 1953년 5월 29일, 마지막 캠프에서 출발한 뉴질랜드 출신의 에드먼드 힐러리(뒤에 '경'칭호를 받음)와 네팔인 셰르파 텐징 노르가이는 남동쪽 능선을 오른 후 남봉을 지나 정오 무렵 정상에 이르렀다.

그후 여러 나라에서 수많은 원정대가 등반을 시도했으며, 그 가운데 많은 경우가 성공했다. 

 

 

에베레스트의 사우스콜 루트

1963년 2명의 미국인이 아무도 오른 적이 없는 서쪽 능선길을 택해 정상을 정복하고 사우스콜로 하산함으로써 처음으로 에베레스트 산 횡단에 성공했다. 

 


에베레스트의 사우스_ 노스 등반 코스
한국인으로서는 1977년 9월 15일 대한산악연맹 에베레스트 원정대 (대장 김영탁) 소속의 고상돈이 셰르파 펨바노루부와 함께
에베레스트 등정 사상 14번째로 정상 정복에 성공했다.
 
1987~88년 겨울에는 허영호가 동계등정을 시도해 정상에 올랐으며, 그는 1993년 4월에 다시 한번 등정을 시도, 성공했다.
 
1993년 5월 16일에는 동국대학교 에베레스트 원정대 소속 대원인 박영석·안진섭·김태곤 등 3명이 정상 등정에 성공했다.
 
그러나 안진섭은 하산 도중 추락사했고 정상공격조 지원을 위해 등정하던 남원우는 아이스폴 지대에서 실족사했다.

 

20세기 후반 까지는 이 산 정상 등정에 성공한 소수의 산악인 이름이 크게 보도 되고 등정 인수의 통계도 발표 되었으나 근래에는 등산장비와 등산방식이 크게 발달하여 한 해에 수백명이 정상에 오름으로 그 희귀성이 크게 떠러지게 되었다.

 

그러나 산 그 자체는 여전히 불가사의한 자연의 상징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히말 14좌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