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세계의명산-이미지/백두산트레킹앨범

2019년 01월24일~27일(4일) 두만강(도문시) - 03

정상고집 2019. 2. 11. 12:06

2019년 01월24일~27일(4일)

장소 : 백두산

제 2일차 0125 : 북백두산


제 3일차 0126 : 서백두산


제 4일차 0127 : 두만강(도문시)


한민족과 만주족의 영산(靈山)
북한 중국 국경에 있는 활화산이자 초화산으로, 한반도에서 가장 높은 산이다. 봉우리는 총 16개로 최고봉은 해발 2,750m인 병사봉(兵使峰)이며, 각 봉우리 정상 사이에 칼데라 호수인 천지를 품고 있다. 

백두산의 높이는 나오는 자료마다 조금씩 다른데, 한국, 북한, 중국, 일본 네 나라가 해발 고도를 재는 기준이 다 다르기 때문이기도 하고, 과거 측정의 정확성에 의문이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우리가 익히 아는 2,744m는 일제강점기 때 측정한 것. 인공위성에서 정확하게 재는 방법이 도입되기 전에는 높이가 알려진 곳에서 삼각 측량을 통해 높이를 쟀기 때문에 현대적 기준으로는 오차가 있다. 백두산 높이 2,750m는 중국과 북한의 계산이고 2,744m는 한국과 일본의 계산이다.

해발 고도와 구분되는 기복량이란 개념이 있다. 기복량이란 어떤 특정범위 내의 가장 높은 곳과 가장 낮은 곳의 높이차를 말한다. 범위를 1 km2로 하여 기복량을 측정한 연구에서, 백두산의 기복량은 2,505 m라는 논문이 있다.

한반도에서 가장 높은 산이다. 량강도 삼지연군과 중국 지린성 사이에 있다. 대한민국의 명목상 행정구역상으로는 함경남도 혜산군 보천면과 함경북도 무산군 삼장면에 걸치며, 천지(용왕담) 전역은 혜산군 보천면 관할이다. 중화민국 명목상 행정구역으로는 안둥성(安東省) 창바이현(長白縣)과 쑹장성(松江省) 안투현(安圖縣)에 걸친다. 천지는 창바이현 관할.

한민족 만주족의 영산으로, 한국 북한 애국에도 나온다. 고려시대에 제사를 지냈고 조선시대 사전 중 중사(中社)를 지내는 제사터를 표시하는 지도에도 큼지막하게 그려져 있으며 대한제국 시기에 칭제건원하면서 황제국의 전례에 따라 오악(五岳)을 설정할 때도 북악으로 지정되어 제사를 지내는 영산으로 여겨졌다. 고려시대에 서경에 세운 '팔성당'에도 호국 백두악 태백선인 실덕 문수사리보살(護國白頭嶽太白仙人實德文殊師利菩薩)이라는 신격을 모셨다는 기록이 고려사에 남아 있고,  삼국유사에서도 신라에서 신성시하던 5대 산에 관한 전설을 보면 "이 산은 곧 백두산의 큰 줄기로, 각 대에는 진신이 늘 있는 곳이다" 라고 기록한 부분이 있어 신앙으로도 백두산을 꽤나 중시하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물론 아래 항목에 나와 있듯 백두산에 대한 신앙이 지금만큼 크게 두드러진 것은 근현대를 거친 이후부터이며, 그 전까지는 백두산이 지금만큼 유별나게 두드러지지는 않았다.

현재는 북한과 중국이 절반씩 나눠서 관리하고 있다.
중국5A급여유경구로 지정되어있다.


'조선 국경에서 멀지 않은 산림 가운데 태백산, 즉 백두산이 구름 위에 솟아 있습니다. 이 산은 지금 왕좌를 차지하고 있는 청조(淸朝)의 시조인 한왕(汗王 누르하치)의 탄생지이기 때문에 중국에서 유명합니다.
그 산 서쪽 비탈에는 그의 옛 집이 보수되어 보존되어 있는데, 중국인들은 그곳을 종교적 예배의 대상으로 삼고 있습니다. 아주 먼 지방에서 경건한 순례자들이 와서는 이마가 땅에 닿도록 조아립니다.'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가 페레올 고 요한[ 주교에게 보낸 편지 中


백두산이라는 이름이 등장하는 가장 오래된 문헌은 『삼국유사』로, 신라 명주 오대산을 백두산의 줄기로 소개하는 기사가 두 차례 등장하며 『고려사』 세계와 성종 10년(981)에도 등장한다. 그 이전 기록의 경우 『삼국사기』, 『삼국유사』, 『제왕운기』에서 여러 차례 등장하는 '태백산'을 지금의 백두산을 가리키는 것으로 추정하는 편이다.  단군신화부여고구려를 설명하면서 '태백산'을 무대로 언급하고 있는데 혼용되던 이름은 대체로 10세기 후반부터 백두산이라 불린 것으로 추정되지만, 김대건 신부의 편지 사례에서 보듯 19세기 때까지도 태백산이라는 이름이 쓰이기도 한 것으로 보인다. 또, 조선 시대 이전부터 백두산 이외에도 장백산을 혼용했다. 조선왕조실록에도 장백산이 심심찮게 나오며, 오히려 백두산보다 훨씬 더 많이 나온다.

이 부분에 조금 부연 설명을 하자면, 일단 일연은 <삼국유사>에서 단군신화를 설명할 때는 환웅이 자리잡은 태백산에 '묘향산을 이른다'는 주석을 달았으나, 고구려 건국 신화 부분에서 동부여 왕 금와가 태백산 남쪽 우발수에서 유화를 만난 부분에서는 태백산에 특별한 주석을 달지 않았고, 다만 고구려=졸본부여라 하면서 졸본을 요동 인근으로 비정했는데, 지리적인 상황으로 보아 학계에서는 백두산으로 본다. 반면 이승휴의 <제왕운기>에서는 처음부터 태백산이라고만 적고 별도의 주석을 달지 않았으며, 부여, 옥저, 신라, 고례(高禮), 예맥이 모두 단군의 자손이라고 보는 동시에, 이승휴 자신이 중국에 사신으로 갈 때 요하 근처의 무덤을 현지인들이 "이 무덤은 부여 부마 대왕의 무덤입니다" 라고 증언하는 것과, 요하 인근을 부여의 땅으로 기록하고 부여가 후조선의 후예라고 기록한 가탐의 기록을 실어놓아 요하 일대와 백두산을 부여 영토로 추정하고 있다. 여기서 단군 신화의 태백산을 일연이 묘향산이라고 주석을 단 데에는 백두산으로 바로잡아야 한다는 설(서대석 교수의 주장), 묘향산이 불교의 성지라서 그 영향을 받았다는 설, 백두산에 대한 인식이 희박해지면서 백두산 신앙의 요소가 묘향산으로 이동한 것을 반영했다는 설(최남선 주장), 고조선의 수도가 평양으로 이동하면서 평양 지역에 토착화되면서 변했다는 설 등이 있다(단군 문서 참조).

일제강점기 이후 한국의 민족주의가 더욱 강해져가며, 단군 관련으로 백두산의 위상이 증가했다. 북한 김일성 정권의 (자칭) 백두산 혈통, 단군릉복원 등과 남한 이승만 정권의 단군상 설립, 단기 사용이 한국인의 단군 숭배를 상징한다. 이러한 단군 숭배 사상과 맞물려 한국에서 백두산은 단군 신화의 고향으로써 민족의 영산 취급을 받게 된다.

백두산에 관련된 신화는 한민족뿐만 아니라 만주족, 특히 청나라에서도 나타난다. 만주족의 기원 신화의 중심지 또한 백두산이며 청나라 시절 백두산은 만주족의 영산으로서 매우 특별한 대우를 받았다.

중국에서는 산해경의 기록에선 불함산(不咸山)으로, 이후 위진남북조 시대(221∼589)에는 태백산(太白山), 도태산(徒太山) 등 여러 이명으로 불리웠다. 현대에는 '창바이산(長白山)'이라고 통일되었는데, 이는 만주어로 '긴 흰 산', '큰 흰 산'이라는 뜻인 '골민 샹기얀 알린(Golmin Šanggiyan Alin)'을 의역한 것으로, 역사적으론 요나라금나라 시기부터 쓴 이름이다. 이러한 명칭은 9개월 가까이 눈이 쌓인 특색 있는 산정의 모습을 잘 반영했다. 즉 현대 중국이 사용하는 '장백산'이라는 표현은 유래에서 보듯 한족(漢族)의 용어는 아닌 것. '장백산', '백산'은 우리나라가 백두산을 지칭한 이름 중 하나이기도 하다. 10세기 무렵부터는 중국에서 대부분 장백산, 백산이란 명칭으로 많이 사용되었다. 이 시기 고려에서도 장백산이란 명칭으로 많이 불렀고, 조선 시대에도 이어졌다. 지금의 백두산이란 명칭은 조선 말기에서나 빈도가 높아진다.

일본 NHK에서 북한 측의 협력을 얻어 백두산 일대의 식생을 50분짜리 자연 다큐멘터리로 담아낸 적이 있는데, 여기서 볼 수 있는 백두산이 그야말로 '희고 긴 산'이다. 한국측 미디어에서 대개 백두산 천지를 그려내는 데 비해 이 다큐는 삼지연 일대의 자연을 담고 있어서 밑에서 올려다보는 백두산의 모습이 보이기 때문.

영어권에서는 백두산이란 이름을 중국식으로 읽어서 'Baitou Mountain'이라고 하기도 한다. 한편 환빠들은 '밝달뫼'라는 어처구니없는 명칭을 원래 이름이라고 홍보하고 있다. 이른바 순우리말 의 이름이라고 도는 이름 가운데 10월이 하늘연달(개천절 때문)이라는 주장도 더 석연찮게 하는 구석이다. 일단 공식 표기는 북한의 표기인 Paektu. 

백두산의 가장 높은 봉우리 이름은 병사봉(兵使峰)이다. 북한에서는 장군봉이라고 하는데,  장군봉이라는 작명을 한 사람은 김정일. 1963년 8월 백두산 방문시, 백두산의 최고봉 이름이 병사봉인 걸 알고 "수령님은 백두산이 낳은 장군님이신데 제일 높은 봉우리가 병사봉일 수는 없다. 장군봉으로 고치게."라고 말했단다. 그런데 백두산의 병사봉은 병사(兵士)가 아니라, 지금의 사단장~군단장 급에 해당하는 조선시대 병마절도사(兵馬節度使)를 줄여 말하는 것이다. 북한 학자들이 이를 모를 리 없겠지만 누구 말이라고 토를 달겠는가(...) # 통일하면 다시 '병사봉'으로 바꾸자

북한의 계급 중 상류층인 핵심계층 중에서도 최고위 계층을 이 '백두산 줄기'라고 부른다. 김일성 생전부터 끝까지 숙청되지 않고 함께한 측근 인사들과 그 가족들을 지칭한다. 백두혈통.

21사단의 사단가에 백두산이 나온다.


국경선

6.25 전쟁이 끝난 후 북한 중국이 맺은 조중변계조약에 따라 현재 북한과 중국의 국경선은 천지 한가운데를 지난다. 이 국경조약은 북한 방향으로 뻗은 백두산 천지의 54.5%를 북한령으로, 중국 방향으로 뻗은 백두산의 나머지 45.5%를 중국령으로 인정한다. 정확하게는 백두산 봉우리 16개 중 9개가 북한령, 7개가 중국령이다.

이 때문에 한국 사회에서는 북한이 중국에게 백두산의 절반을 팔아넘겼다는 낭설이 마치 사실인 것처럼 받아들여진다. 그러나 이미 조선과 청은 백두산 부근의 국경선을 확정하기 위한 딜을 본 적이 있다. 1712년에 천지 동남쪽 4km 지점에 세웠던 백두산정계비가 그 증거. 당시 정계비부터 흑석구까지 정계비와 목책 그리고 석토퇴로 이루어진 경계표지물이 설치됐다. 즉, 경계표지물 이남만 조선의 영토라고 볼 수 있으며, 천지를 비롯한 그 이북은 청 제국의 영토라고 보는 것이 타당한다. 이 같은 국경은 조중변계조약 체결 이후 유효하지 않으며 현재 천지에 가보면 북한과 중국이 세워놓은 경계비가 상당수 존재한다. 

다만 한국 북한이, 대만 중국이 다른 나라와 체결한 조약을 인정하지 않기 때문에 영토 분쟁 여지가 있다. 대한민국 정부는 외교부에서 백두산은 한국령이라고 밝힌 바 있으며, 정부 발행 지도에서도 계속 자국 영토로 표시하여 백두산을 한국령으로 주장한다. 대만 역시 백두산 전체를 자국 영토로 여긴다. 물론 대만이 타이완(타이민) 지구 이외에는 특별히 나서지 않기 때문에 명목상에 불과하다. 과거 정부 발행 연감에서는 이곳이 아예 한반도가 아니라고까지 언급하기도 했는데, 현재는 타이완 지구 이외에는 언급이 없다. 애초에 저런 곳까지 신경 쓸 정도로 상황이 좋지는 않다(...) 마주한 쪽끼리는 어찌어찌 합의를 했는데, 해당 지역에 행정력이 미치지 못하는 쪽(대한민국, 대만)에서는 이를 인정하지 않고 해당 지역 전체에 대한 영유권을 주장하는 양상.





자연

높은 위도와 고도로 인해 이 산의 정상부는 한반도에서 가장 추운 곳이다. 10월부터 5월까지가 겨울이며, 1월 평균기온 -25℃, 7월 평균기온 7.8℃로 시베리아와 비슷한 기온 분포를 보이며, 강수량은 1,500mm 정도로 많다. 1997년 1월 2일에는 무려 영하 51도가 기록되기도 했었다. 정상에 한정하면 한반도를 통틀어서 유일하게 한대기후에 속하는 지역이다. 다만 사실 이렇게 고산 지역에서 나타나는 한대기후는 보통 한대기후보다는 고산기후로 분류하는 게 일반적이다.

백두산의 날씨는 눈, 구름, 안개, 폭우, 강풍, 혹한 등이 일반적이며, 연중 변화무쌍해서 쾌청한 날씨를 찾아보기 힘들다. 9월부터 다음해 6월까지 겨울이며, 봄이 되면 곧 여름, 가을로 이어져 버린다. 하루에도 수십 차례 기상이 급변하고 구름에다 안개로 가려져 백두산의 전경을 보기가 어렵다. 그래서 날씨 좋은 타이밍 맞추어 백두산 천지의 모습을 보는 것은 행운이라 여길 정도다.

여름에도 갑작스럽게 기온이 낮아져 방풍복을 준비해야 한다. 기온은 연평균 6도 ~ 8도, 최고기온 18도 ~ 20도이며, 연중 눈, 비가 내리는 날이 200여 일, 연중 강풍일수는 270일이다. 겨울 날씨가 1년 중 230일이다. 6월 초까지 눈에 덮여있는 백두산 등정은 한여름 장마철보다 6월 말에서 7월초, 8월 말에서 9월초가 적당한 시기이다. 실제로 평양 남북정상회담 당시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위원장 등 일행이 천지를 방문했을 때는 쾌청했으나 늦가을 날씨 였으며, 그 다음에 김정은이 10월 중순 천지를 다시 방문했을 때는 블리자드가 몰아치는 사진이 북한 매체에 등장했다.(....)

백두산이라는 이름답게 정상 부분에 화산재가 퇴적되어 만들어진 용결 응회암층이 있다. 눈이 없어도 어쨌든 백두? 현지 가이드들은 '백 번 올라서 두 번 천지를 보기 어렵다'고 지어졌다는 농담을 한다.

칼데라 호수인 천지가 정상에 있으며, 이 천지의 수량은 20억 톤이라는 양을 자랑한다. 천지의 수량이 이렇게 많다는 건 문제가 되는 게, 화산이 폭발할 때 주변에 가장 크게 영향을 주는 것 중 하나인 화산재가 많이 발생한다.

오늘날 천지는 천여 년 전인 10세기 무렵 폭발로 형성된 것이다. 백두산이 천여 년 전에는 높이 3500m 정도였고 폭발하면서 오늘날 모습이 되었다는 설이 있지만, 그 폭발은 천여 년 전이 아닌 훨씬 이전에 일어난 일이고 천여 년 전에는 주로 부석을 분출했다. 백두산에 안 가 본 사람들은 백두산이 후지산처럼 봉우리가 우뚝 솟아 있는 형태라고 생각하지만, 백두산은 후지산과 달리 개마고원이 있고 주변에 2000m가 넘는 봉우리들이 즐비하기 때문에 사람들의 막연한 상상과는 상당히 다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