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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02월24일(일)~03월01일(목) 오사카성, 도톤보리 5일 - 05

정상고집 2018. 3. 2. 14:02

2018년02월24일(일) ~ 03월01일(목) 5일


장소 : 오사카 (팬스타 2박 / 현지 2박)

      

제 2일차 : 콘고잔트레킹

당신이 삼림욕을 제대로 하고 싶다면 일본 오사카(大阪)를 가보면 어떨까. 피톤치드는 삼나무에서 가장 많이 나온다. 삼나무숲으로 유명한 뉴질랜드 북섬의 레드우드나 캐나다의 로키산맥에서나 볼 수 있는 엄청난 삼나무 숲을 일본 오사카의 금강산(金剛山·해발 1125m·일본 발음은 곤고산) 다이아몬드 트레일에서 만날 수 있다.


일본 오사카의 지붕으로 불리는 최고봉 금강산을 중심으로 이루어진 다이아몬드 트레일에는 수백 년 묵은 우람한 삼나무와 너도밤나무들이 원시림을 이루고 있다. 트레일 중간에 만나는 농촌마을과. 병풍처럼 펼쳐진 삼나무숲을 걷다 보면 자연인이 된 기분이 들면서 나무에서 뿜어져 나오는 향기와 피톤치드가 몸을 치유해 주는 것 같다. 말 그대로 힐링코스다. 다이아몬드 트레일은 금강산을 중심으로 인근 이와와키산(岩湧山), 야마토가쓰라기산(大和葛城山), 니조산(二上山) 일대 다이아몬드 형태의 약 45㎞에 이르는 산행길이다


제 3일차 : 이와와키트레킹

이와와키산은 기미고개(紀見峠)역에서부터 출발하는 코스로 잡았다. 오래된 일본 가옥과 작은 마을들을 지나는 걷기 코스가 일품이다. 3합목(3合目·등산로 10분의 3 지점)까지 1시간30분 정도 소요되며 산 정상까지는 거의 3시간이 걸렸다. 정상에는 억새풀이 봉우리를 덮고 있어서 한층 더 좋아 보였다. 내려오는 길에도 삼나무숲이 하늘을 덮고 있어 맑은 날임에도 불구하고 숲 속은 어둠이 드리워져 있다. 피톤치드가 뿜어져 나와 몸과 마음으로 전해졌다. 자연이 주는 고마운 선물을 듬뿍 받아가는 고마운 길이다.


제 4일차 : 오사카성

오사카 성 (일본어: 大坂城,大阪城)은 셋쓰 국 히가시나리 군 오사카에 있었던 아즈치모모야마 시대부터 에도 시대의 성이다. 다른 이름은 긴조 (金城) 혹은 긴조 (錦城)로, 과거에는 오사카(大坂)가 근대에 와서 오사카(大阪)로 표기하도록 개정되었기 때문에, 현재에는 오사카(大阪)라고 많이 표기하고 있다. 또, 과거에는 오자카라고 읽었지만, 현재에는 오사카로 많이 읽혀진다. 도요토미 정권의 본성으로 있었지만, 오사카 전투에서 소실되었다. 그리고, 그 후, 에도 시대에 재건을 해 에도 막부의 서일본 지배의 거점으로 삼았다. 성이 있는 곳은 현재 오사카 시 주오 구오사카조 공원 (大阪城公園)이다. 구마모토 성, 나고야 성과 더불어 일본 3대 명성중 하나이다.


도요토미 가문의 오사카 성

1583년 센고쿠 시대 이시야마 혼간지와 그 절안에 위치한 마을에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축성을 개시했다.

완성에 1 소요된 혼마루는 이시야마 혼간지터에 조성되었고, 천수는 옛 그림에서 보는 것과 같이 외관은 5층5계이다. 그리고, 기와등에 금박을 입혀 화려하게 장식했다. 히데요시의 임종이 있기까지 니노마루, 산노마루에는 소가마에를 건설해 3중의 해자와 운하가 있는 견실한 성으로 완성되었다. 한창 오사카 성을 축성할 때 히데요시를 방문한 오토모 소린이 성 주위를 둘러보고는〈오사카 성은 삼국.무쌍〉이라고 불렀다고 한다.

축성자로 있는 히데요시 자신은 교토주라쿠 다이, 후시미 성을 차례차례 축성하고, 오사카보다는 주로 교토에 머물렀다. 히데요시가 죽은 후 1599년 도요토미 히데요리가 후시미 성에서 오사카 성의 혼마루로 이주한다. 또, 정권을 실질적으로 장악한 고다이로(五大老)의 도쿠가와 이에야스도 오사카 성의 니노마루로 옮겨와 정무를 보아온다.

1603년 에도 막부가 성립된 후에도 히데요리는 오사카 성에 머물면서 셋쓰를 지배했고, 1614년 오사카 성 겨울전투에서 이에야스가 이끄는 군의 공격을 물리친다. 그리고, 소마에와 산노마루를 폐기하는 조건으로 강화를 맺지만, 조건에 없는 니노마루의 외측 해자까지 메우게 되었다. 오사카 성은 내측 해자와 혼마루만 남는 벌거벗은 성이 되어 버렸다. 히데요리는 매워진 외측 해자를 다시 만들었기 때문에 강화는 파기되어 겨울전투로부터 4개월 후 1615년 오사카 여름전투에서 패배하게 된다. 이때 혼마루는 소실되고, 도요토미 가문은 멸문되었다.


재만 남은 오사카 성은 당초에 이에야스의 외손인 마쓰다이라 다다아키라에게 주었지만, 1619년 막부의 직할령으로 편입되었고, 1620년부터 도쿠가와 히데타다에 의해 성이 재건되어 1629년 완성되었다.

도쿠가와 가문의 오사카 성은 도요토미 가문의 오사카 성의 성벽과 해자를 파괴하고, 전체에 흙을 돋우어 그 위에 높은 석벽을 쌓아, 옛 도요토미씨의 오사카 성의 흔적을 지워버린다.

도쿠가와 가문의 오사카 성은 예전의 도요토미 가문의 성곽의 넓이에 1/4에 불과 했지만, 성의 상징인 천수는 크기와 높이면에서 기존의 도요토미씨 천수를 능가했고, 그 구조도 달랐다. 하지만, 외관은 5층으로 같다. 아마 이렇게 지어진 것은 옛 도요토미씨의 기억을 지우고 도쿠가와씨의 위세를 전국에 알리려는 속셈으로 보인다.

막부 직할 성으로 있는 도쿠가와 가문의 오사카 성의 성주는 도쿠가와 막부가의 역대 쇼군이었고, 다이신에서 선출해 오사카 성 조다이[4]위탁했다. 또, 다이신보다 낮은 직급의 쇼신중에 6명을 선출해 2명은 오사카 조반과 오사카 가반을 두어 성을 경비했다. 에도 시대 여러번의 화재로 손상을 입어 수리를 했지만, 1665년 낙뢰로 인해 천수가 소실되었고, 그 후 천수의 복원은 없었다.

1868년 도바 후시미 전투 후, 막부군은 오사카 성으로 패주했다. 쇼군 도쿠가와 요시노부는 배로 에도로 도망갔고, 오사카 성은 신정부군에 개성되었다. 하지만, 전후 혼란속에 방화가 일어나 건물의 대부분은 소실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