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11월23일(수)~29일(화) 6박7일
날씨 : 맑음
대상지 : 티벳인들의 성스런 청해호, 캉스카설산, 칠채산, 바단지린, 뢰태한묘, 황하석림,
제 1일차(23일) : 인천 - 서안
제 2일차(24일) : 서안 - 서녕 - 티벳인들의 성스런호수 청해호
제 3일차(25일) : 서녕 - 문원 - 캉스카설산 조망 - 간쑤성의 칠채산 - 장액
내몽고 바단지린사막
제 4일차(26일) : 장액 - 바단지린 ( 묘해자 1박 )
텅거리(騰格里)사막은 제4의 중국 사막으로 사막과 호수, 습지, 산지, 벌판 등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망망한 사막속에 자리잡은 달의 호수 월량호(月亮湖)는 유구한 티베트 불교문화와 가장 모던한 웰빙이 조화로운 곳이다.
바단지린(巴丹吉林)사막은 중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사막인 동시에 세계적으로 유일하게 키 높은 모래산이 모여있는 사막이기도 하다. 거기에 유구한 몽골족 문화와 독특한 지형이 사막을 신비한 베일속에 감추고 있다.
텅거리사막이 형성되게 된데는 가뭄과 바람이 그 주요 원인이고 산림벌목과 초원파괴를 중심으로 한 인간활동도 사막의 형성을 도와 토지표면의 식생이 소실되면서 모래만 남게 된 것이다.
바단지린사막의 형성원인은 물 부족이다. 오랜 세월동안 물이 부족하면서 지표의 식생이 점점 소실되고 헐거벗은 사구가 자리를 차지하게 된 것이다. 하지만 바단지린사막에는 크고 작은 호수 113개가 있고 호수마다 맑은 물이 찰랑인다.
바단지린사막의 사구는 이동하는 사구가 아니라 항상 그 자리를 지키고 사막속에 호수가 생기게 된 원인은 바단지린 사막 변두리에 위치한 기련산에서 눈 녹은 물이 사막의 지하를 흐르기 때문이다.
텅거리란 몽골어로 하늘이라는 뜻이고 텅거리사막은 사막이 하늘처럼 끝간데 없이 펼쳐져 지은 이름이다. 텅거리사막 중 모래가 71%, 호수가 7%, 산지와 벌판이 22%를 차지한다.
사막 중 93%가 이동하는 사구이고 7%만이 한 자리에 고정된 자갈사막이다. 이동하는 사구는 평균 수십미터 높이로 이동하는 모래산이고 사막의 변두리나 호수가에 상대적으로 고정된 사막이 위치해 있다.
사막이라고 해서 식생이 전혀 없는 것이 아니다. 건조한 기후와 모래밭에 적응된 키 낮은 관목들이 많이 자라며 사막의 변두리에는 자연 혹은 인공적으로 조성된 숲도 있다.
텅거리사막에는 크고 작은 호수 422개가 있는데 그 중 251개 호수에 물이 있어서 호수 주변에 인간들이 집거한다. 사막호수의 수원은 지하에서 솟아나는 샘물과 빗물이다.
텅거리사막 최고의 호수는 달의 호수 월량호이다. 사막의 품속에 안긴 월량호는 호방하면서도 고요한 모습으로 배같고 거울같이 영적인 분위기를 풍겨 그 어떤 인간의 흔적이란 없는 원초적인 자연을 그대로 보여준다.
특히 월량호는 세 가지 기이한 특징으로 이름이 자자하다. 첫째는 호수의 모양이 중국지도와 흡사하다는 점이다. 높은 곳에 올라서서 호수를 내려다 보면 완정한 중국 지도가 펼쳐져 있는데 호수에 자란 갈대가 성과 성을 분류한다.
두번째는 호수물에 국제보건기구가 추천한 약욕 처방과 거의 같은 다양한 영양분이 함유되어 있고 스스로의 정화기능을 가지고 있다는 점이다. 따라서 월량호는 물이 혼탁해지면 짧은 시간안에 다시 원초적인 상태로 복원시킨다.
세번째는 호수가에 검은 모래밭이 펼쳐져 있는 점이다. 1km 길이에 100m 너비의 모래밭에 10여m깊이의 검은 모래와 진흙이 쌓여 자연이 주는 귀중한 건강 선물이다.
바단지린(巴丹吉林)
세계에서 네번째로 큰, 남한 면적의 절반 크기인 바단지린 사막 중국어로 바단지린 한자로는 巴丹吉林 이다. 이 사막이 사하라나 고비사막과 다른 점은
첫째, 모래결이 비단결처럼 곱고 부드러우며
둘째, 다양한 크기의 오아시스가 100여개 산재되어 있다는 점이다.
중국 내몽고의 바단지린사막과 인접 몽골의 고비사막이 우리나라에 날아드는 황사와 미세먼지의 진원지라 할 수 있다.
높고 험준한 모래산의 바단지린사막은 사막의 모든 아름다운 요인을 다 갖추고 있다. 기이한 모래산과 소리내는 모래, 맑은 호수, 신비한 샘물은 바단지린사막의 네 가지 명물이다.
바단지린사막에는 도처에 피라미드모양의 키 높은 모래산이 솟아 장관이다. 모래산의 산봉과 산봉이 손을 잡고 있는데 모래산의 산등성이는 칼로 깎은 듯 날카롭다.
바단지린사막은 또한 세계적으로 규모가 가장 큰 명사구(鳴沙區)이다. 200m 높이의 명사산에는 기이한 산봉이 줄지어 있고 깎아지른듯한 모래언덕으로 모래가 날아내리며 우렁찬 소리를 낸다.
바단지린사막에는 또한 크고 작은 호수 113개가 있는데 그 중 담수호가 12개이다. 사막의 지하로 눈 녹은 물이 흐르면서 형성된 호수지만 건조한 기후로 인해 수분이 증발되면서 대부분 호수의 염분함량이 높아 진 것이다.
끊임없이 솟아나는 지하수가 증발되는 수분을 보충해주어 여전히 담수호로 남아 있는 호수는 호수마다 호수가에 갈대가 우거지고 호수위로는 하얀 오리가 헤어다니며 물속에는 물고기들이 자유롭다.
담수호기슭마다 사람들이 살면서 생명의 기적을 이어온다. 바단지린사막속에는 24가구에 약 100여명의 목민이 자자손손 살면서 인간과 자연의 조화를 보여준다.
텅거리사막은 내몽골(內蒙古, Neimenggu) 아라산(阿拉善, A'lashan)기 서쪽에 위치해 있다. 감숙(甘肅, Gansu)성 소재지 난주(蘭州, Lanzhou)나 녕하(寧河, Ningxia) 소재지 은천(銀川, Yinchuan)에서 차량을 임대해 이동하는 것이 가장 편리하다.
바단지린사막은 내몽골 아라산기 서북쪽에 위치해 있다. 은천에서 아라산기행 장거리 버스를 이용하거나 자가용을 운전해도 된다. 단, 사막속에는 도로가 없으므로 사막을 달릴수 있는 차량과 사막운전 경험자가 필수이다.
바단지린사막에서는 해마다 8,9월에 사막문화제를 개최한다. 문화제기간 경마와 낙타경기, 모래산 등반 등 다양한 경기에 참여하고 모터찌클과 짚차를 타고 사막의 사진전도 볼수 있다.
텅거리사막을 관광하는데는 여름철과 가을이 최고이다. 겨울과 봄에는 모래바람이 많이 불어 생명에 위험을 조성한다. 그밖에 사막에서는 단독행동이 금물이다. 필히 단체와 함께 움직여야 한다.
사막은 일교차가 상상을 초월한다. 한낮에는 피부가 익을 정도로 땡볕이지만 밤이 되면 겨울같이 춥다. 따라서 사막여행에서는 필히 여름옷과 겨울옷을 모두 준비한다.
사막에서 필수적인 교통수단은 낙타이다. 낙타를 이용할 경우 낙타가 일어서거나 앉을때 유의하고 낙타가 걸을때는 낙타의 율동에 따라 몸을 움직인다.
그리고 안전을 위해 낙타의 뒷다리와 머리쪽 가까이 가지 않는다. 낙타는 평소에 온순한 동물이지만 놀라면 위험할수도 있다. 따라서 낙타 가까이에서 갑자기 큰 소리를 지르거나 화려한 색채의 옷을 입지 않도록 한다. (펌)
끝이 없어 보이는 사막에 길도 없는것 같은데 찦차는 우리가 모르는 표식이 있는지 잘도 달린다.
칭키스칸 동상이 있다.
여기가 몽고임을 증명하고 있다.
내몽골 외몽골의 구분이 생기게된 역사적 배경.
(淸)의 속국이 된 몽골인들은 결국 황폐한 초원 지대로 밀려나 오늘날과 같은 유목민으로서의 삶을 갖게 되는데 , 1911년 청(淸)조의 멸망과 중화민국의 탄생 속에 몽골은 가장 영향력있는 활불인 제 8대 젭춘 담바 호탁트를 국가수반(보그드 칸)에 추대하면서 독립을 선언한다. (이때 내몽고 지역의 활동가들이 합류했고, 몽골족의 통합을 위해 내몽고지역에도 군대가 파견되기도 했지만 이러한 민족통합운동은 러시아와 중화민국의 간섭으로 실패한다)
하지만 몽골이 독립을 선언한 외몽골 지역이 원래 중국고유의 영토라고 주장하며, 중화민국이 침공해 들어오자 결국 몽골(외몽고)은 독립을 취하하고, 1915년 몽골. 중국. 러시아의 캬흐타 조약으로 중화민국의 자치구로 전락하게 된다. 더욱이 1917년 러시아의 혁명으로 몽골에 영향력을 행사하던 두 강대국의 균형이 깨지자 1919년 중화민국은 몽골왕공들을 협박하여 몽골의 자치지위마저 -자발적으로-반납하게 한다.
이런 가운데 러시아의 반혁명 (白軍)세력이 러시아 본토에서 혁명세력에 패주난입해 몽골지역으로 들어오게 되는데, 이중에 1920년 몽골지역으로 들어온 반혁명 (白軍)세력 운게른 남작은 몽골인의 反漢감정을 이용하여 1921년 수도 후레(울란바타르)지역의 중국군을 러시아 국경 캬흐타로 몰아내고, 라마교의 활불(달라이 라마)을 수반으로 하는 정부를 세워 외몽고에 일시적인 독재자가 된다.
이런 상황에서 나라를 되찾아야겠다고 생각한 몽골인들은 러시아 혁명군의 원조를 받아 중국군과 활불 정부군을 맞서 열심히 투쟁하고 결국 1921년 수도 후레(現-울란바타르)를 점령하게 되는데, 몽골은 활불 정부군으로부터 정권을 인수받은 <7월 11일>을 지금도 독립 기념일로 기념한다.
이렇게 몽골 해방군에 의해 성립된 몽골정부는 다시 제8대 젭춘담바 호탁트를 국가수반으로 하게 되고, 정부 내각수반 갖추게 된는데 이때까진 특별히 사회주의 색채를 띄지는 않았지만, 1924년 접춘담바의 사망이후 조금씩 사회주의 색채가 나타나서 결국 1924년 11월 몽골 인민공화국(인민당-인민혁명당)의 완전한 독립을 선포함으로써 세계에서 2번째 사회주의 국가가 되었다.
한편 내몽골 지역은 일본군이 1930년대를 거쳐, 2차대전 패전 전까지 내몽골을 장악 하고있었지만 계속되는 게릴라전쟁으로 인해실질적 지배권을 장악하지는 못했다.
그런중에 당시 대장정을 마치고 섬서성 연안에 머무르고있던 모택동은 일본의 점령지 내몽골에 대해서 자치구로 인정할 것을 약속하게되고, 결국 1947년 5월 1일 내몽골은 중국에서 첫 번째 자치구가 된다.
몽골국(외몽골)지역은 당시 사회주의 종주국인 러시아의 강한 영향력 아래 있었기 때문에 중국정부도 외몽골 지역에 대한 문제를 언급하지 않았고,이렇게 됨으로 오늘날과 같은 외몽골(몽골공화국) 과 내몽골(중국 자치구)의 형태를 갖게 된다. 외몽골(몽골국)이 1961년에 유엔(UN)에 공식가입하고, 1964년 중~몽 국경이 확정되어지자 내 외몽골의 분열이 고착되었다.
바단호
왼쪽엔 모래사막을 오르고 있는 모습들
모래에 빠지기 때문에 오르기가 쉽지 않다.
바단호의 풍경
데크도 있다.
바단호을 배경으로
바단호 옆에 바단염호이다.
반경이 넘 아름답다.
염호앞 하얀 소금들
바단염호 앞에서 서방님이 한컷
아름다운 바단염호 반경을 뒤로하고
다시 사막속으로~~
자연의 신비로움을 만끽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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