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상고집 2016. 7. 18. 13:55

인도네시아 공화국(인도네시아어: Republik Indonesia 레푸블릭 인도네시아[*]), 약칭 인도네시아(인도네시아어: Indonesia)는 동남아시아 오세아니아에 걸쳐 있는 섬나라이다. 세계에서 가장 많은 18,108개 섬으로 구성되어 있다. 한국 및 중국에서는 한자 가차 인도니서아(印度尼西亞)의 줄임말인 인니(印尼)로도 불린다.

인도네시아는 말레이 제도에 속한다. 인구는 약 2억 5천만으로, 이슬람교 국가 중에서 무슬림이 전체 인구의 약 87%를 차지하는 국가이며 중화인민공화국, 인도, 미국에 이어 세계에서 네 번째로 인구가 많다

 

고대 왕조(국가가 성립된 것은 358년, 한국은 삼국 시대였을 때)로, 마자파힛 스리비자야가 있었던 인도네시아는 네덜란드로부터 1602년부터 1945년 제2차 세계 대전이 끝날 때까지 지배 (국기는 네덜란드의 국기를, 국가는 네덜란드의 국가를, 공용어는 네덜란드어, 자와어, 인도네시아어를 사용)받았으며, 제2차 세계 대전 중에는 일본의 지배를 받았다. 이후 다시 네덜란드의 점령 시도가 있었으나, 유엔의 중재로 1949년 12월 27일 네덜란드로부터 완전히 독립하였다. 인도네시아는 1945년을 독립한 해로 여기고 독립 기념일을 8월 17일 (국정 공휴일)로 지정했지만 네덜란드에서는 1949년을 독립한 해로 여긴다. 그리고 수카르노가 초대 대통령을 지냈다. 1962년에는 자국의 수도 자카르타에서 아시안 게임이 개최되었다.

독립 전후 인도네시아는 공산주의자들의 반란이 있었으며, 이 과정에서 이민자였던 중국인들은 종종 공산주의자로 간주되곤 했다. 1965년 수하르토 장군은 공산주의자들의 쿠데타를 무력으로 진압했는데, 이 과정에서 공산주의자와 무관한 중국인들이 희생되었다. 이후 수하르토는 수카르노로부터 권력을 이양받았으며, 새로운 대통령이 되었다. 수하르토는 재직 중 중국인들을 인도네시아 원주민에 동화시킨다는 정책을 펼쳐, 중국어 사용을 금지하고 중국식 이름을 인도네시아식으로 개명하게 하는 등 중국인들에 대한 탄압이 잇따랐다. 1975년 포르투갈에서 독립한 동티모르를 강제로 점령, 합병하였다. 1998년 혁명으로 수하르토는 하야했고, 이어 부통령이었던 바하루딘 유숩 하비비가 새 대통령으로 취임했으며 이듬해 압둘 라흐만 와히드가 새 대통령으로 취임해 민주화가 이루어졌다. 2003년까지는 간접 선거가 이루어지고 있었으나, 헌법 개정으로 2004년 첫 직접 선거가 실시되었으며, 당시 대통령 메가와티 수카르노푸트리 수실로 밤방 유도요노가 대결하여 유도요노의 승리로 끝났다. 2007년에는 자국을 비롯한 말레이시아-타이-베트남에서 아시안컵이 개최되었다. 2012년에는 미국에서 제작된 반이슬람영화로 인해 인도네시아에서도 시위가 일어났으며, 반이슬람영화로 촉발된 시위를 놓고 온건파와 강경파가 대립하였다.

 

인도네시아는 17,509개의 섬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6,000개의 섬에 사람이 살고 있다. 사람들이 많이 사는 섬은 세계에서 인구밀도가 제일 높고 인도네시아 인구의 절반이 살고 있는 자바 섬과, 수마트라 섬, 칼리만탄 섬, 파푸아 섬, 술라웨시 섬이다.

 

인도네시아의 섬들이 적도를 중심으로 북위 5°에서 남위 10° 사이에 위치하므로 완전한 열대성 기후를 나타내며 동남아시아 계절풍대의 전형적인 특징을 보인다. 일반적으로 연중 높은 기온을 나타내 거의 전지역이 평균기온 25∼27℃를 기록하며 적도변의 중앙지대에서는 월별 변화가 거의 나타나지 않는다. 강수량은 몬순의 영향을 크게 받아 중심부에 해당되는 적도 부근의 연중 강우지역을 제외하면 대체로 건기와 우기의 구별이 뚜렷하다. 주요지역의 연평균 강수량은 폰티아나크(보르네오 섬) 3,175mm, 파당(수마트라 섬) 4,172mm, 자카르타(자바 섬) 1,755mm이며, 소순다열도의 동쪽은 훨씬 더 건조하다. 더운 날씨 때문에 12월, 1월에도 해수욕을 즐길 수 있다.

자카르타 (남위 6도)의 기후는 열대성 기후로서, 높은 기온과 많은 강우량이 특징적이며, 이에 따라 습도도 연평균 75∼85%로 상당히 높다. 연평균 기온은 26.9℃로 연교차가 1℃에 불과하지만 1월과 2월에는 20℃이하가 되는 날도 있다.

 

대통령제 공화정을 채택하고 있다. 인도네시아에도 공정거래위원회(Indonesia's Business Competition Supervisory Commission)가 있다. 대통령의 임기는 5년이며, 한 차례에 한해 연임할 수 있다. 대통령 후보는 총선 득표율 25% 이상 또는 의석점유율 20% 이상인 정당 또는 연합만 선출 가능하다.

대통령은 직선제로 선출된다. 1999년까지는 국민협의회(MPR)에서 간선제로 선출했으나, 현재는 그 직을 상실했다.

 

인도네시아의 행정 구역은 33개 주(provinsi), 2개 특별주(daerah istimewa), 1개 수도권(daerah khusus ibu kota)의 34개로 나뉜다. 수도 자카르타이다. 제2의 도시는 수라바야이다.

 

인도네시아와 싱가포르는 1973년 협정을 기본으로 2005년까지 바탐 섬 북부 지역에 관한 분쟁을 완결하기로 합의한 상태이다.[2] 1950년 인도네시아의 초대 대통령 수카르노는 인도네시아와 인도 양국 국민들에게, 식민지배 세력에 의하여 붕괴된 양국간의 1천년이 넘게 존재해온 우호 협력을 강화하자고 촉구하였다.[3] 그로부터 15년 후, 자카르타에서는 정부가 선동한 구호가 들렸다. "제국주의의 종, 인도를 타도하자. 처부수자, 우리의 적".[4] 그러나 1966년 봄, 양국의 외무장관은 우호관계의 시대에 대하여 다시 거론하기 시작하였다. 양국은 각각의 수도에 대사관을 두고 있다.[5][6] 터키와의 관계는 16세기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자와 섬 포르투갈이 식민지화를 시도하자 자와의 이슬람교 술탄은 이에 저항하며, 오스만 제국에 도움을 청하였다. 오스만 제국은 이에 대해 거대한 배와 병력을 파견하였고 이들은 이슬람 형제의 나라를 돕기 위해 노력하였다. 이로 인해 오늘날에도 양국은 긴밀한 관계를 보여주고 있다. 각각의 수도에 각각 대사관을 두고 있다.[7][8] 인도네시아는 대한민국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들다 수교했다. 인도네시아와 대한민국은 경제, 군사적 협력에서 다방면으로 폭넓은 교류중에 있다. 대한민국 국적자로써는 권준, 유재훈 등의 많은 한국선수들이 인도네시아 프로리그에서 선수로 뛰고 있으나, 인도네시아 현지인 (現地人)들 중에는 아직 K리그에서 뛰는 선수가 없다. 한국으로의 직항편은 대한항공, 아시아나 그리고 가루다 인도네시아 세 개 항공사가 자카르타 발리에만 취항하나, 대한항공은 현지의 다른 도시에도 취항할 예정이다.

 

인도네시아와 베트남은 둘다 아세안 회원국이다. 인도네시아의 대통령 메가와티 수카르노푸트리는 2003년 6월에 베트남을 방문하였다. 이 때, 양국은 "21세기를 향한 우호 및 실용 협력을 위한 기본 협약"에 서명하였다. 2005년 5월, 인도네시아의 대통령 수실로 밤방 유도요노가 베트남을 방문하였다. 같은 해 12월에는 양국의 수교 50주년을 기념하는 행사가 양국의 수도에서 펼쳐졌다.

 

8세기, 캄보디아는 자바의 사일렌드라 왕국의 침략을 받아 그들의 지배하에 들어갔다.

 

인도네시아와 말레이시아는 문화적, 민족적으로도 공통점이 많은 나라다. 두 나라 다 말레이인, 또는 말레이 계열의 민족들이 대부분이며 언어도 말레이어를 사용하지만, 서구 열강들의 분단으로 인해 서로 다른 생각과 특징들을 많이 갖고 있다. 말라야가 1957년 독립한 이후 수하르토는 위대한 인도네시아(Indonesia Raja; 말레이시아에서는 '위대한 말라야'라는 뜻으로 'Melayu Raya'라고 했다)를 주장하며 말라야와 함께 대(大)말레이 국가의 건설에 대해 논의한 적이 있었다. 하지만 논의 과정에서 파열음이 생겼고, 말라야가 싱가포르, 사라왁, 사바를 합병한 뒤 '말레이시아'를 건국하려 하자 관계가 틀어져, 결국 위대한 인도네시아는 물거품이 되고 말았다. 후에 인도네시아는 사바를 무력으로 합병하였고, 이에 말레이시아가 군을 보내 사바를 되찾았다. 1960년대 양국간의 관계는 그리 좋지 않았으며, 1965년 1월 1일 인도네시아가 말레이시아가 안전보장이사회 회원국으로 선임된데 대하여 항의의 표시로 유엔을 탈퇴한 일도 있었다.[10] 그 후 영토분쟁 등 모든 것이 그나마 해결됐지만, 현재도 양국간의 분쟁은 이어지고 있다.